명절과 귀성
올해도 큰 변고 없이 추석을 잘 지냈다. 추석은 덥고 긴 여름을 벗어나서 가을로 들어서는 첫머리에서 맞기에 여름 내내 지은 농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올 여름에는 유난히도 비가 많이 와서 곳곳에서 물난리를 겪었을 뿐 아니라 농사에도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일조량이 적어 곡식이 제대로 영글지 못하고 각 종 과일도 제대로 크지도 못하고 익지 못해서 당도도 많이 떨어지고 색깔마저도 제 색을 못 내어 과일로서의 가치를 잃은 상태로 수확을 맞은 것이다. 그래도 예상보다는 풍작은 아니라도 평년작은 되었다는 평가 속에 추석을 맞게 되어 다행이다.
추석에는 본래 햇곡식과 햇과일로 음식을 만들고 조상에게 먼저 차례를 올리고 온가족이 음식을 함께 먹으며 가족 간에 정을 새기며 즐거운 하루를 보내는 연중 가장 풍성하고 여유로운 날이다. 추석은 옛 신라시대부터 이어온 우리 민족의 대 명절이다. 농경시대에서부터 시작되어 오늘날 산업화시대로 이어오는 동안 그 많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추석도 풍상을 겪었다고나 할까, 고비마다 변화를 가져왔다.
멀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지금부터 50~6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농업국가로서 전 국민의 70~80%가 농업에 종사했을 만큼 국가의 기본 산업이 농업이었다. 그나마 요즘처럼 과학농도 아니고 낙후된 재래식 영농법의 농사였기에 생산량도 적어 자급자족조차 어려워 가난을 면치 못하던 시절이었다.
이때만 해도 가족들이 모두 농사에 종사했기에 대가족제도하에 살았고 따라서 인구의 이동도 적었다. 그랬기에 명절이 닥쳐도 요즘처럼 민족의 대 이동이라는 말이 나올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60년대에 들어서며 산업화가 되면서부터 전국 각지에 공장이 생김에 따라 일자리를 찾아 농촌의 젊은 인력들이 도시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공장에 취업해서 공돌이, 공순이 소리를 들어가며 고된 일을 하며 푼푼이 모운 돈 고향에 부모님께 보냈다.
이런 고달픈 생활 속에 추석이나 설 명절이 오면 고향생각 부모님 생각에 어찌 고향집에 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때만 해도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하지도 못 했고 자가용 승용차는 감히 생각조차 못할 시대였다. 오로지 기차나 버스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다. 기차와 버스는 초만원이었고 심지어는 기차 지붕 위까지 빼곡히 올라타고 가야했다. 서울역 대합실은 귀성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어느 핸가 열차를 타기 위한 귀성객들이 승강장으로 밀려 내려가다가 계단에서 엎치고 덮쳐 일어난 대사고로 지금까지도 ‘서울역 압사 사고’라는 서글픈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지 않은가.
그 후 80년대에 들어 고도성장을 맞으면서부터 꿈에 그리던 ‘마이카’의 붐이 일기 시작해서 자가용을 갖는 사람이 늘어나게 되었다. 고속도로가 전국을 거미줄처럼 건설되고 전국이 1일 생활권이 된 오늘의 귀성 풍경은 어떤가? 그 많은 고속도로가 귀성 차량으로 꽉 메워 주차장을 방불케 하고 극심한 정체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8~9시간을 걸려서 간다. 어찌 보면 지난 시절의 귀성 풍경보다는 즐거운 고통이 아니겠는가.
한편, 부모님이 안계시거나 차례를 지내지 않을 사람들은 일찍이 벌초와 성묘를 하고 추석 연휴를 이용해서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늘어가고 있음을 본다. 이토록 명절의 풍습도 세월의 흐름 속에서 변화를 거듭한다. 우리의 대 명절인 추석과 설의 본질은 조상을 섬김과 가족 간에 정을 나눔이다. 이것은 이제 신앙처럼 되어버렸다. 그러기에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이날이면 흩어져 살고 있던 가족이 부모님이 계신 고향을 찾는다.
그러나 부작용도 없지 않다. 해마다 명절 때면 귀성길에 예기치 않게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는 경우도 빼놓지 않고 일어난다. 이런 불행은 명절만 아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을,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세상은 더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전통적으로 신앙처럼 지켜오는 명절의 풍속도 세월의 흐름 속에 변화를 맞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월이 말을 한다면, 오늘날 명절의 귀성과 민족 대 이동의 모습을, 앞으로는 어떻게 변화 시킬 것인가를 묻고 싶다.
명절의 정신과 본질은 변함없으되 형식과 방법은 세상 변화에 따라 현실성 있게 합리적으로 개선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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