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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륜도 돈 앞에는

문석흥 2013. 11. 28. 18:12

천륜도 돈 앞에는


  나는 법원에서 민사 소송 조정위원을 여러 해 해 오면서 요즘 와서 특히 부모 자식 간에, 형제자매 간에 소송 사건의 조정을 자주 하게 된다. 이런 가족 간의 소송에는 대부분 재산 분배 문제가 원인이다.
  우리의 통념상으로 보아 유산 문제로 가족 간에 법정 소송에까지 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규정을 지을 정도로 여겨왔지만, 이런 통념 자체가 이젠 흘러간 얘기가 되어 버렸다. 나는 조정에 앞서 부모 자식 간에, 형제자매 간에 한쪽은 원고로서 한쪽은 피고로서 조정실에 온 이들에게 먼저 친 혈육이 맞느냐고 묻는다. 그것은 이들이 천륜의 관계임을 다시 한 번 가슴으로 인식하게 하여 재물에 얽힌 감정을 천륜의 정으로 녹여 보려 함이다.  나는 내가 가진 윤리 도덕의 잣대로 접근해 보지만, 그러나 나는 곧 조정위원인 나 자신이 조선시대의 고리타분한 선비가 아닌가함을 느낀다. 이미 이들의 마음속에는 빼앗아서라도 내 것으로 해야겠다는 욕심으로 꽉 차있을 뿐, 내 친 혈육이니 내가 좀 덜 갖고 나눠 줘야겠다는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음이 역력했다. 오히려 서로 간에 얼굴을 붉혀가며 언성을 높이기도 한다. 하긴 그랬으니 법정 소송에까지 오지 않았겠는가.
  조정이란, 소송의 당사자들 사이에 첨예한 이해관계에서 견해 차이와 극단의 대립과 감정으로 생긴 분쟁을 당사자 간의 합의에 따라 자주적으로 해결하는 절차이다. 이에 비해 소송은 분쟁 당사자 간의 주장과 다툼의 사실 관계에 대한 증거에 의하여 판사가 법률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강제적으로 해결하는 절차이다.
  그러므로 소송은 절차도 복잡하고  변호인을 선임할 때에는 비용도 많이 들 뿐 아니라 판결에 의해 강제적으로 해결되기 때문에 당사자 간에는 크나큰 마음의 상처를 입고 평생 원한 관계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조정은 분쟁 당사자 간의 타협과 양보에 의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때문에 승자도 패자도 없이, 감정이나 원한관계가 없이 서로 원만한 관계를 다시 유지할 수 있다.
  조정에서는 조정위원의 역할이 중요하다. 쌍방의 주장을 잘 듣고 분쟁의 핵심 요인을 파악하여 쌍방 간의 손익관계를 잘 절충한 조정안을 제시하고 설득함으로써 양보와 타협을 이끌어내는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정위원의 건전하고 풍부한 상식과 사회적 경험, 전문 지식을 분쟁 내용에 맞게 활용해야 한다.
  경제 발전과 함께 개인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풍요로운 생활을 하면서도 마음은 늘 가난하고 소유욕은 더 높아만 져가는 것이 현대인의 속성인 것 같다. 옛날에는 땅은 한낱 땅이었을 뿐, 돈은 아니었는데 지금은 땅이 황금이 되었다. 이런저런 개발의 물결을 타고 땅이 고가로 팔리거나 수용이 되어 엄청난 보상금이 나오다 보니 부모도, 자식도, 형제자매도 모두 돈으로 보이는가. 그 돈 때문에 천륜 지간이 원고 피고의 처지가 되어 소장을 내고 법원에까지 오다니…
  조정을 하다 보면 잘 합의가 되어 원만하게 조정이 성립되고 원·피고 간에 서로 악수하고 조정위원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하며 돌아갈 때는 보람을 느낀다. 그런데 하물며 천륜 지간의 조정을 무위로 마칠 때는 남 남 간의 조정 때 이상으로 더 큰 환멸과 비애를 느낀다. 진정 천륜도 돈 앞에는 하나의 단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