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를 태우며
폐지를 태우며
올해는 추위가 오래가는 바람에 봄다운 봄을 못 느끼며 벌써 5월을 맞이했다.
그래도 봄은 봄인지라 겨울 설거지를 해야겠다는 마음에서 먼저 책상 주변 정리 작업을 했다. 질서 없이 포개져 있는 책 들, 서류, 신문지, 청첩장, 연하장 등 하나하나 분류하면서 둘 것과 버릴 것을 가렸다. 책은 분류해서 책꽂이 꽂아 두면 되지만, 서류나 몇 장씩 모아 서 된 회의자료, 보고서 그리고 청첩장, 연하장 같은 것은 꼭 보관할 필요성도 없지만, 막상 버리려니 마땅한 방법이 없다. 전 같으면 아궁이에 넣고 태우면 되겠지만, 지금의 주택 구조로 보아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폐지로 묶어서 내놓으면 폐품 수집하는 사람들이 잘 가져가지만, 폐지 속에 담진 내용이 어딘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가서 공개되지나 않을까 하는 조심스런 마음에서 선뜻 내놓을 용기가 서질 않는다. 그래서 생각 끝에 버려진 양철통(식용유통)을 주어다가 집 옥상에 놓고 양철통 속에 폐지를 한장 한장 뜯어 넣어 가며 태웠다. 타고난 재는 흙에 섞어 화분흙으로 쓰니 일거양득의 효과가 되었다.
그런데 불에 태우면서도 종이가 너무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요즘 종이는 거의 A4용지다. 거기다 한 쪽 면만 프린터기에 인쇄해서 쓰고 뒷면은 하얀 깨끗한 용지 그대로이다. A4용지는 지질이 얼마나 좋은가. 옛날 물자가 귀하던 시절 같았으면 뒷면도 요긴하게 썼을 것이거늘 하는 마음에서 죄책감 같은 느낌도 들었다.
종이가 귀했던 시절에는 공책도 마분지나, 좀 낫다는 게 갱지로 되었다. 학교에 시험지도 마분지에 프린트해서 사용했기에 잘못 써서 지우개로 지우다 보면 찢어지기 일 수였다. 마분지는 원료가 펄프가 아닌 짚이나 폐지로 만든 것이기에 지질도 나쁘고 잿빛의 거친 바탕의 용지다. 그래서 공책이나 시험지 공문서 같은 사무용으로는 부적합한 종이였으나 워낙 물자가 귀한 시절이었으니 그러려니 하고 쓰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아껴야 했기에 다 쓰고 난 공책은 서예시간에 서예 연습을 했다. 그리고 화장실의 화장지로도 요긴하게 썼다.
이런 어려웠던 시절, 가끔 미군 부대에서 자매학교 방문 때 선물로 가져오는 학용품이나 종이를 보면 지금 우리가 쓰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지만, 그 당시는 그 재질의 우수성을 한눈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종이는 지금 A4용지 그대로였다. 당시로는 이런 용지를 처음 보는 것으로 감히 함부로 쓸 엄두를 못 내고 아까워서 보물 보관하듯 하기도 했다.
요즘처럼 풍요로운 시대에 살다 보니 옛날 못 살았던 시절의 삶을 떠올리며 비교하게 된다. 그래서 당장 사용도 안 하고 또 앞으로도 더 쓸 필요성도 없는 물건에 대해서도 애착을 갖고 버리지 못하고 쌓아 두어 젊은이들한테 빈축을 산다. 더러는 아까운 마음에서 새것 좋은 것 놓아두고 굳이 퇴색된 낡은 것을 사용하는 궁색한 모습을 보임이 구세대들의 특성이 다. 그러나 구세대들에게는 지난날의 어렵게 살았던 시절, 아끼고 절약하던 잔존의식이 화석처럼 굳어진 채 마음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금 젊은 신세대들은 이 시대가 그들의 삶의 출발점이기에 그 이전의 생활상은 보지도 못했고 경험도 없다. 그들에게는 후대에 가면 지금 이시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