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석흥 |
2008-08-18 20:48:12, 조회 : 99, 추천 : 0 |

하인스 워드와 어머니 김영희 씨 <지역 평안신문 사설 원고> 미국 프로풋볼리그 수퍼볼 최우수 선수 하인스 워드와 그의 어머니 김영희 씨 모자가 지난 4월 3일에 외가와 친정 나라인 한국을 방문해서 9박 10일 만에 4월 12일,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하인스 워드의 어머니 김영희 씨는 1977년, 당시 두 살배기 아들 하인스 워드를 데리고 이 땅에서의 천대와 멸시의 한을 안고 하인스 워드의 아버지의 나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기대에 부풀었던 그 땅도 희망의 땅은 아니었다. 남편에게 버림받고 아들마저 빼앗겨야 했다. 그래도 김영희 씨는 그 절망과 좌절의 땅에서 설음과 괄시를 받아가면서도 온갖 잡일로 고생을 해가며 아들을 다시 찾아다 우리식으로 키웠다. 초중고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아들의 소질을 키워주어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미식축구 수퍼볼 영웅으로 성공시킨 것이다. 하인스 워드도 어린 시절, 혼혈아라고 놀림을 받는데 대한 수치심으로 어머니에게 반항도 하고 속을 썩인 적도 있었다 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한 모성애와 한국 어머니 특유의 교육열로 결국 아들을 감화시키고 한국식 효행의 아들로 키운 것이다. 드디어 수퍼볼 영웅이 되어 어머니와 함께 외가 나라를 방문하여, 온 국민으로부터 극진한 환대를 받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이 땅에서 태어난 그와 처지가 같은 많은 혼혈인들에게 깊은 감동과 희망을 주었다. 이번 이들 모자가 와서 머무는 동안 우리 모두가 물심양면으로 이 두 모자에게 극진한 환대와 예우를 아끼지 않았다. 또 마땅히 그렇게 했어야 했다. 그러나 어머니 김영희 씨가 같은 혼혈어린이 어머니들과의 대화에서 한 말을 우리는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한국사람 안 쳐다보고 생각 안 하고 살아온 30년이었다.” “내가 그렇게나 힘들 때는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더니, 이제 와서 우리 워드가 유명해지니 관심을 참 많이 가져준다.” “근데 참 이상해, 우리 새자식들이 피부색 다른 것은 그렇게 싫어하는데 왜들 그렇게 머리는 노랗고 빨갛게 물들이고 다니는지…” 한편 이들 모자가 머무는 동안 이들에게 가는데 마다 각 업체에서 앞다퉈가며 벌린 파격적인 물질 공세는 이들 모자를 환영하고 격려하는 뜻도 있었겠지만, 그 이면에 상업적 계산도 깔려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열등감 속에서 차별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는 다른 혼혈인들에게 평소에 다만 적은 량의 도움이라도 베풀고 있는지를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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