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고 보면-發
지하철을 타고 보면-發
지하철을 타고 서울을 가는 길이었다. 지하철 안에는 일반 승객 이외에 잡상인들도 있고 적선을 바라는 걸인들도 있다. 어느 허름한 옷차림의 노파가 다가와서 장갑을 사라고 한다. 장갑이 있어서 안사겠다고 했더니 싸게 팔 터 이니 사라고 졸라댄다. 처음부터 살 의사가 없어서 끝내 사양했더니 2천원인데 1천원만 내란다. 나는 잔돈도 없고 장갑이 있어서 살 생각이 없으니 다른 데나 가보라고 다시 한 번 분명히 했다. 그랬더니 이 노파는 거스름돈이 있다면서 천 원짜리 지폐를 여러 장 꺼내 보이며 기어이 팔 태세였다. 노파의 행색도 초라하고 딱해 보여서 장갑은 고사하고 천 원 한 장 적선하려고 마음은 먹고 있었는데, 천 원짜리 거스름돈까지 넉넉히 준비해 가지고 다니는 것을 보고 그나마 적선의 마음이 싹 가시고 말았다.
일반 잡상인들은 차림도 말끔하고 가지고 다니는 물건도 생활용품으로서 더러는 값싸고 필요한 것도 있어서 사는 사람도 꽤 있는 편이다. 그러나 걸인형상인들은 물건도 아주 싼 쓸모없는 저질품이며 위장된 동정심을 유발시키며 억지 판매를 하는 수법이 마음에 거슬린다.
한 편 적선만을 바라며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신체장애를 가졌다. 그 중에서도 시각장애인들이 많다. 이들은 하모니카를 불거나 구슬픈 가락의 찬송가를 녹음한 카세트를 목에 걸고 한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앞을 더듬으며, 또 한 손에는 돈을 받는 자그마한 플라스틱 그릇을 들고 지나가며 무언의 적선을 구한다. 이들 잡상인이나 걸인들은 한 번 지나가면 되돌아오는 경우가 없다. 아마 일정한 구간을 정해 놓고 그 구간에서만 활동하고 다음 열차를 타는 것 같다. 다른 날 지하철을 타게 되면 같은 사람들을 또 만난다. 이쯤 되면 직업이 아니겠는가.
서울역에 내리면 또 어떤가. 광장 여기저기 땅바닥에 앉아 소주 마시며 취해 떠드는 사람, 취해서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쓰러져 자는 사람, 이들은 다 노숙자들이다. 요즘은 거지란 말이 없어졌지만 말이 좋아 노숙자지 거지나 무엇이 다르겠는가.
세계 13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오늘에도 열차 안의 잡상인이나, 구걸인, 역 앞의 노숙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잡상인은 그렇다 치고, 걸인, 노숙자들은 자세히 보면 몸도 건강해 보이고 노동력도 있어 보인다. 그 정도이면, 노동 현장에는 일손도 귀해서 외국인 근로자들도 와서 일 하는데 왜 저러고 사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흔한 말로 아마도 팔자소관인 모양이다.
외국에 나가봐도 잡상인이나 걸인은 있다. 경제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에서도 볼 수 있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세월이 아무리 변해도 동서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이 것 만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아마도 그들만이 갖는 무소유의 행복감에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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