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6월이 오면
문석흥
2013. 11. 30. 05:40
6월이 오면 6월은 여름이 시작되는 뜨거운 달이지만, 역사상으로도 많은 뜨거운 사건과 시련을 겪었던 달이기도 하다. 6월이 오면 나는 비록 어린 시절에 겪었던 일이지만 6·25 전쟁을 잊을 수가 없다. 6·25 전쟁이 일어난 지도 햇수로 60년, 사람의 나이로 치면 육순이 된 것이다. 지금은 서기 연호를 사용하지만, 그 당시는 단기 연호를 사용하던 시절이었다. 6·25는 단기 4283년(서기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북한 공산군이 38도선 전역에서 일제히 기습 남침 공격으로 시작된 전면전이었다. 나는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다. 어른들은 전쟁이 났다고 모두 걱정스러워 하며 온 동네가 어수선한 가운데, 26일 월요일 아침, 평상시처럼 수업준비를 하고 등교했다. 이날 선생님과 전교생들이 운동장에 집합한 비상 조회에서 교장선생님은 비장한 음성으로 훈화를 시작했다. 그 요지는, 북한군의 남침으로 전쟁이 나서 오늘부터 무기 휴교하니 무두 귀가하여 학교에서 다시 복교 통지가 있을 때까지 등교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 1·2·3학년은 교실로 가서 담임선생님 지시를 받을 것이며, 4·5·6학년은 운동장에 그대로 남으라고 했다. 당시 학제는 고등학교가 없고 중학교가 6년제였다. 4·5·6학년은 요즘의 고등학생들인데 그들은 학도병으로 나가서 군번도 없이 전선에 나가 싸우다 대부분 전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서울은 3일 만에 점령되고 28일 한강철교는 폭파되었다. 국군은 계속 후퇴하고 피난민의 행렬은 남으로 이어졌다. 그 후 UN군의 참전으로 전세는 역전되어 압록강까지 북진하였으나 다시 중공군의 참전으로 후퇴와 전진을 거듭했다. 전쟁 중에서도 피난지에서 비록 천막학교이지만 전시 종합학교라는 이름으로 학업은 계속되었다. 한 편, 중학교 학제 개편으로 중·고가 분리되어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당시 UN군과 북한군 사이에 휴전 협정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반공포로를 석방하고 차제에 통일을 해야겠다는 의지로 북진을 주장하면서 휴전을 반대했다. 이로 인해 학교에 가면 수업을 전폐하다 시피 하고 연일 휴전 결사반대 시위에 나서야 했다. 그러나 우리의 염원인 통일의 희망은 목전에서 무너지고 드디어 단기 4285년(서기 1953년) 7월 27일에 3 년여의 전쟁 속에서 휴전 협정이 성립되어 현재의 휴전선을 경계로 남북이 다시 분단된 채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 엄연한 남침에 의한 동족 간의 전쟁을, 북침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살고 있는 실정이다. 요즘 북한은 온 세계가 반대하는데도 핵무기를 개발하고 공공연히 핵실험을 하며 툭하면 대한민국을 불바다를 만들겠다고 우리에게 공갈과 협박을 하고 있다. 저들은 과연 우리를 동족으로 여기고나 있는지가 의심스럽다. 이런 북한이 존재하는 한, 결코 6·25를 잊을 수 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