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의 출세
막걸리의 출세
요즘 막걸리의 인기가 드높다. 막걸리는 우리의 전통술이지만, 고급술은 아니었다. 술이라기보다는 농사일 하면서 힘들고 허기질 때 요기를 겸해서 마시던 술로서 농주라 부르기도 했다.
지금은 양조장에서 대량 생산을 하지만, 전에는 가정에서 직접 만들었다. 막걸리는 술밥(쌀을 쪄서 건조시킨 것)에 누룩가루를 섞어서 물과 배합하여 독에 담아 적당한 온도 속에서 발효과정을 거쳐서 된 술이다.
술이 익었을 때 용수(술을 거르는 가는 댓가지로 만든 기다란 바구니)를 술독 속으로 눌러 놓으면 그 안에 맑은 술이 고이는데 이것을 떠낸 것이 동동주 또는 약주, 청주라고도 한다. 동동주라 함은 술밥 알이 더러 떠 있어서 그렇게 불렀다. 또 동동주를 떠내지 않은 상태에서 다 익은 술밥을 휘저어 삼베 자루에 담아 짜내는 방법으로 거른 것이 막걸리다. 그리고 동동주를 떠내고 남은 술밥에 물을 부어 양을 동동주 떠내기 전과 같이 맞추고 휘저어 막걸리와 같은 방법으로 짜낸 것이 탁주다.
청주, 막걸리, 탁주는 한 몸에서 태어난 한 핏줄의 술이다. 청주는 알코올 도수도 높고 맑고 빛깔도 노랗고 좋아 고급주로서 제주로 사용했고 집안에서는 제일 높으신 어른이나 손님이 왔을 때 드리는 술이었다. 그리고 막걸리는 청주와 알코올 도수는 차이가 없으나 청주에 비해 맑지 못하고 신맛, 단맛, 쓴맛, 떫은맛이 어울려 걸쭉하고 텁텁해서 큰 사발로 한 잔 가득 부어 단숨에 마시는 술이다. 탁주는 청주를 걸러내고 물에 희석해서 짜낸 술이기에 알코올 도수도 좀 낮으나 막걸리와 거의 비슷한 맛으로 막걸리와 함께 값이 싸고 요기도 되어 서민들이 즐겨 마시는 술이다.
이들 술은 다 쌀을 원료로 만드는 술이기에 쌀이 귀했던 지난 시절엔 가정에서 마음대로 만들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되기도 했었다. 다만, 허가된 양조장에서만 제조되어 보급되었다. 감시의 눈길을 피해가며 가정에서 밀주(몰래 만든 술)를 만들다 들키면 제조된 밀주는 압수당하고 벌금을 물었다. 이런 엄격한 감시 속에서도 농촌에서는 몰래 술을 담그며 전통술의 명맥을 이어온 것이다. 그 이유는 조상에 드리는 제주로 쓰이기 때문이고 또 양조장 술의 제조과정이나 맛과 순도를 불신했기 때문이다. 양조장에서도 쌀 부족 때문에 정부 시책으로 한때 쌀 사용을 못 하게 하고 옥수수나 밀가루를 사용토록 했기에 술의 제 맛이 나지 않아 양조장 막걸리의 선호도가 더욱 하락했다. 게다가 돼지 축산의 번창으로 삼겹살이 흔해지자 그동안 그 쓰고 독한 맛 때문에 소외되었던 소주가 다시 등장하여 인기를 누리자 막걸리는 점점 대중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고 했다. 이 땅의 수백 년 전통의 토속주 막걸리가 소주 맥주 양주에 가려 값싼 서민주로서 그늘에만 있다가 인제 와서 왜 갑자기 양지로 나오게 되었는가? 막걸리 속에는 각종 영양소가 들어 있고 특히 유산균의 보고로서 술로서도 영양분으로서도 그 진가가 내외에 공인된 것이다.
이젠 서민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수출까지 해서 세계인의 입맛을 매혹하고 있다. 한일 정상 만찬에서도 건배주로 등장하고 기내에서도 캔 막걸리로 제공될 정도로 신분 상승이 되고 출세의 길에 들어섰다.
한 때나마 밀주라는 죄명으로 단속당하고 서민이나 마시는 싸고 텁텁한 하급주로서의 그 한을 이젠 마음껏 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