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도 세월 따라
선비도 세월 따라
“見金如石(견금여석-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게다.
이 말은 최영 장군이 어렸을 때 그의 아버지가 항상 그에게 경계하여 이른 말이다. 최영 장군이 이 아버지의 유훈을 평생 가슴에 새겨 잊지 않았다 한다.
우리의 옛 선비들은 청렴결백하게 사는 것을 으뜸가는 도리로 삼았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청백리로 역사에 기록된 사람이 300명이나 된다고 한다.
청백리 하면 조선조의 명재상 황희(黃喜)정승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영의정을 비롯한 60년 동안이나 고위 공직에 있으면서도 방에 장판을 깔지 않고 살았으며 집에 비가 새도 방안에 그릇을 받쳐 놓았으며 돈 들여 지붕을 고치지 않았다 한다. 그야말로 安分知足(안분지족)과 安貧樂道(안빈낙도)를 몸소 실천한 것이다.
특히 공직자에게는 “四不三拒(3불4거-네 가지 해서는 안 될 일, 세 가지 거절해야 할 일).”라는 수칙이 있었다. 네 가지 해서는 안 될 일로써 첫째 공직에 있을 때에는 부동산 투기를 해서는 안 되며, 둘째 부업을 가져서도 안 되며, 셋째 남의 물건을 탐내어 훔쳐도 안 되며, 자기 집을 늘려서도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세 가지 거절해야 할 일로써 첫째 상사의 명령이라도 부당한 것은 거절할 것과 둘째 백성의 민원은 반드시 처리하되 답례는 정중히 거절해야 하고, 자기 집에 경조사가 있어도 부조는 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가난을 수치로 여기고 살지 않았던 시대였기에 이런 삶이 가능했겠지만, 지금은 산업의 발달로 경제 부흥이 되고 풍요로운 삶을 사는 시대가 아닌가. 특히 자본주의가 사회가 발달하면서 배금사상과 물질 만능 사회가 된 이 시대에 과연 견금여석, 사부삼거 같은 정신이 지켜질 것인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능력껏 돈을 벌어 누리고 싶은 것 다 누리며 살고자 함은 당연하고 이를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각자의 위치에 따라 분수와 도리는 지켜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며칠 전(3/25) 신문에 국회, 대법원, 정부공직자 윤리위원회가 공개한 고위공직자 재산 변동 신고 내역이 발표되었다. 대상자 2,323명 중 본인, 직계 가족의 재산 총액이 평균 15억 4486만 원이라 한다. 평균적으로 70%가 작년보다 늘었다고 한다. 재산이 늘어난 이유로 부동산 가격과 주가의 동반 상승 때문으로 분석되었다. 부동산이나 주식은 재테이크가 아닌가. 선비도 세월 따라 변해야 하거늘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런데 아직도 고위 공직자들이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불려다니고 혐의가 인정되어 옥살이하는 사례는 뭐 그리 영광스런 일이라고 지금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공직권력과 부, 둘을 다 누리고자 하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는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청백(淸白)과 청빈(淸貧)을 겸한 법조인 세 분이 있었다. 흰 두루마기와 흰 고무신 차림으로 다녔던 김병로 대법원장, 염색한 군 작업복에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녔던 김중섭 서울고법원장, 관용차를 거부하고 도보로 출퇴근했던 최대교 서울고검장. 이 세분을 법조 삼성(法曺三聖)이라 일컫는다. 전직 대통령 중에서도 사후 남겨진 재산이 별로 없는 분도 있다.
세월이 아무리 바뀌고 변해도 국민들은 공직자에게 청빈(淸貧)까지는 아니더라도 청백(淸白)이 되기를 바란다. 이런 각오가 없이 공직자가 되려는 마음가짐부터가 잘못이다. 사불삼거(四不三拒), 지금 이 시대의 공직자에게도 꼭 해당하는 좋은 가르침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