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이야기
군대 이야기
남자들이 모이면 군대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한다고 한다. 나도 제대한 지가 50년이 되지만, 지금도 스스럼없는 자리에서는 지난날 군대 생활 이야기를 하곤 한다. 나 뿐 아니라 군대에 다녀온 사람들은 군대 이야기만 나오면 저마다 한 마디씩은 다 할 만큼 군대 이야기는 잊히지 않는 추억담이다.
세대에 따라 군대의 체험도 다르겠지만, 엄격한 군기와 계급 사회 속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공통점이라 하겠다. 그래서 견디다 못해 가끔씩 탈영병도 생기고 자살병도 생기지 않는가. 그런가 하면 군대 공포증이 심한 사람들은 처음부터 군 입대를 피하려고 합법 비합법 갖가지 수단을 다 동원하여 면제를 받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는 병역의 의무가 있기에 적령기에 이르면 먼저 징병검사를 받고 군 입대 여부의 판정을 받는다. 징병검사 결과 합격 판정을 받으면 군 입대 영장을 받고 어김없이 입대를 해야 한다.
6·25 전쟁 때는 영장을 받으면 본 당사자는 물론, 온 집안이 초상집이나 다름없는 분위기였다. 훈련소에 가서 정규과정의 신병 훈련도 제대로 못 받고 총 쏘는 법이나 겨우 익히고는 바로 전선으로 갔으니 입대 후 며칠 되지 않아 전사 통지를 받는 경우도 흔히 있었다. 그런가 하면 전사했다는 아들이 살아서 돌아오는 꿈같은 일도 있었다. 목숨은 부지했어도 부상을 입고 상이군인이 되어 지금도 장애의 몸으로 사는 용사들이 있지 않은가.
이렇게 전쟁터에 나가 하루살이처럼 죽는 상황 속에서 법적으로 의무가 아니라면 군에 가기를 소원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 당시는 영장이 나오면 부모들이 서둘러서 결혼을 시키고 첫날밤을 치르게 하고 입대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것은 군대에 가서 죽으면 대를 잇지 못한다는 절박한 심정에서였다. 그런 줄 알면서도 딸 가진 집에서도 쾌히 혼인을 허락했다. 지금 같으면 있을 법이나 한 일이겠는가.
전쟁 때는 미망인도 많고 출산율도 떨어져 인구가 감소했지만, 휴전이 되고 다시 평화가 오자 군에서 살아 돌아온 젊은이들이 결혼도 많이 하고 출산율도 급증하여 현재 1957~8년생 연령층의 인구 층이 두터운 것도 의미 있는 결과이다.
전쟁 때는 물론, 휴전 후에도 당시 병사들의 보급품이나 군 시설은 열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 당시에 비하면 지금의 군 생활은 최고의 문화생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게다. 요즘 병역 비리 문제로 처벌을 받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지금은 전시도 아니고 군대 환경이 열악하지도 않을 뿐더러 복무기간도 전에 비해 훨씬 짧은데 왜 기피하려는지 이해가 안 간다.
일부러 어깨뼈를 탈구시켜 수술을 하거나 남의 병력을 위장하는 수법으로 버젓이 병역 면탈을 받는다. 돈을 받고 이런 비리를 벌이는 관계 공무원과 의사와 브로커 등 다 용서할 수없는 사람들이다. 현재의 직업을 지키며 남보다 앞서나가겠다는 이기적이고 비양심적 병역 면탈자에게 군 복무 기간을 1.5배로 늘리고자 하는 대책은 꼭 실행되어야 한다. 한편 군 복무필자들에게 주려는 가산점 문제도 긍정적인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