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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하면 떠오르는 6.25전쟁

문석흥 2025. 8. 4. 16:43

6월하면 떠오르는 6.25 전쟁

 

 

문 석 흥

 

  112개월을 4계절별로 나누면 1.2.12월은 겨울, 3.4.5월은 봄, 6.7.8월은 여름, 9.10.11월은 가을이다. 그렇게 보면 6월은 여름이 시작되는 달이다. 6월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세대별로 다르겠지만, 특히 80후반~90대 이상 노인세대에게는 6.25 전쟁일 것이다.

  1945815일 일제가 2차 대전에서 연합군에게 항복을 선언하고 식민통치를 하던 이 땅에서 물러나고 우리는 해방을 맞이했다. 당시 해방의 기쁨도 잠시, 무정부 상태에 이 땅에는 연합군의 명분으로 북위 38도 선을 경계로 북쪽에는 소련군이 남쪽에는 미군이 들어와 사실상 군정체제로 들어갔다. 통일 정부를 수립하고자 노력을 했으나 결국 불가능해졌고 북에는 공산정권이 남에는 민주정권으로 서로 이념체제가 다른 두 정권이 양립되게 되었다.

  이로부터 5년 후 1950625, 일요일, 새벽 북한 인민군은 소련으로부터 탱크를 지원 받아 무방비 상태로 있던 38선 전역을 일제히 침공하였다. 당시 군사력 면에서 빈약했던 우리 군은 후퇴를 거듭하여 대구 낙동강 전선을 구축하고 인민군과 대치하였다. 한편 미국을 위시한 16개국의 un군이 참전하게 되고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작전으로 서울을 탈환하였다. 그리고 계속 우리 국군과 함께 북진을 하며 약화된 인민군을 후퇴 시켜 평양을 탈환하고 195010, un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하게 되었다. 이로서 김일성 공산 정권은 만주로 탈출하여 10511월 중국 공산당의 중공군의 지원을 받아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참전하여 우리국군과 un군은 후퇴를 하게 되었다. 이 후퇴를 1.4후퇴라 했다. 그것은 195114일의 후퇴 시작 날짜를 뜻한다.

  이후 공산군은 서울을 재점령했고 계속 남침하며 우리 국군과 un군과의 전진 후진을 거듭하던 중 1953727, 개성 근교에 있는 판문점에서 un군 대표와 중공군, 인민군 대표가 현 전선을 경계로 한 휴전협정을 맺게 되었다. 이로써 3년여의 전쟁은 일단 멈추고 휴전 상태로 현재까지 이어 오는 것이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 반대와 북진 통일을 완강히 주장하였다. 그리고 연일 전 국민이 나서 휴전결사반대 궐기대회를 열고 시가행진도 했다. 그러나 결국 북진통일의 기회를 놓쳐 버리고 수많은 사상자와 파괴만을 남긴 채 원점으로 돌아간 동족 간에 참혹한 전쟁이었다.

  전쟁이후 75년이 지난 현재 남 북 간에는 사회 각 분야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차이로 우리 대한민국이 앞서 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196176불에서 36천불에 이르고 있다. 20252포브스”(미국의 경제 잡지) “가 발표한 ”2025년 세계 강대국 순위에서 세계 195개 국 중 대한민국이 6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군사력 강국 순위에서는 세계 5위이다.

  이제 다시는 동족 간에 피 흘리는 전쟁 없이 평화적 통일의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