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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와 카트

문석흥 2013. 11. 28. 16:51

마트와 카트



   가끔 아내와 함께 마트에 가곤 한다. 마트가 차를 타고 가야할 만큼 좀 먼 거리에 있기에 집안에 운전기사인 내가 함께 갈 수밖에 없다. 마트에 가서도 나야 별 흥미도 못 느낀 채 그저 아내 뒤를 따라다니며 구경만 할 뿐이다. 그러다 보니 지루하기도 하고 피로감도 느껴  휴식 코너에 앉아서 아내가 쇼핑을 마치고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차츰 마트에 가는 횟수가 늘어나자 아내는 나에게 앉아서 쉬게 하지 않고 쇼핑카트를 맡기며 따라 다니게 하는 것이다. ‘그냥 따라다니는 것도 억지 춘향인데 카트까지 밀고 다니라니’, 처음에는 좀 거부감이 들었으나 싸울 수도 없고 해서 마지못해 어색한 폼으로 카트를 밀며 따라 다녔다. 그러는 중 어쩌다 아는 사람을 만나면 멋쩍기가 이를 데 없었다.
   사실 이런 마트의 쇼핑 행각이 나로서는 흥미도 없으려니와 카트를 밀고 아내의 뒤를 따라다니기란 더욱 싫었다. 그러나 몇 번 하다 보니 처음보다는 좀 익숙해 졌고 예사롭게 여겨졌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부부들도 보면 대부분 카트는 남편들 차지였다. 옛날 같으면 불출이 소리를 들어야 했을 것이다. 세상이 많이 변하다 보니 남녀의 관계도 이젠 평등시대가 되어 그 알량스런 남편의 체면을 내 세워 봐야 백수 된 주제에 그나마 아내에게 홀대나 받을 게 뻔한 일 아니겠는가.
   지금은 지방 소도시에도 대형 마트들이 들어섰다. 옛날 같으면 5일마다 돌아오는 장날이래야 평소 살 수 없었던 물건들을 살 수 있었는데 이젠 마트가 생겨서 언제고 필요한 물건을 구애 없이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마트는 현대화가 가져다 준 대형 옥내 시장이다. 깔끔하고 쾌적한 분위기에 각종 상품들이 잘 분류되어 코너 별로 진열 되어있고 포장이나 위생처리도 잘 되어 있다. 가격도 정찰제라 필요한 물건을 카트에 담아 계산대에 와서 체크 하고 물품 합계액을 신용카드 결제나 현금으로 지불하면 된다. 물건 하나를 놓고 비싸다 싸다 실랑이 하며 흥정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 개운찮은 마음으로 외상 거래도 해야 했던 시절에 비하면 이 얼마나 확실하고 간편한 거래인가. 이런 모습은 예전에 서양 영화에서나 보아왔었는데 이젠 우리의 생활 문화도 그 수준에 와 있으니 옛날엔 생각이나 해봤던 일인가.
   젊은 부부들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카트에 태우고 밀고 다니며 이것저것 물건을 골라 담으면서 오손 도손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쇼핑하는 모습은 너무도 정겹고 행복해 보였다. 내 세대는 그렇게 못하고 살아 온 것이 후회스런 감이 든다.
   이젠 미우나 고우나 아내와 둘이만 가야하는 여생이거늘, 부질없는 낡은 관렴일랑은 다 털어 버리고 정겹고 행복한 모습만 보고자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