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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시대

문석흥 2013. 11. 28. 16:55

세트시대


  세트는 한 벌이라는 뜻의 외래어이다. 그러나 양복 한 벌이라고는 해도 양복 한 세트라고는 하지 않는다. 축구에서 공격수 두세 사람이 상대편 문전에서 작전 계획에 따라 절묘한 패스를 통해 골을 성공시키는 것은 세트플레이라고 한다. 좀 속된 표현이지만 서너 사람이 서로 죽이 척척 맞게 행동하는 것을 세트로 논다고 한다. 세트는 벌과 같은 뜻을 가졌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세트로 표현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을 때도 있다.
  지금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도 보면 세트화 된 것이 많다. 선물, 다기, 가구, 화장품 등…, 세트는 여러 개가 어울려서 잘 조화를 이뤄 한 가지 결과를 창출하는 기능을 갖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이 세트 구성에서 한 가지만 빠져도 아니면 다른 게 섞여도 소기의 결과를 나타낼 수가 없게 된다.
  요즘 집에 화장실을 수리 했다. 해 놓고 보니 수리라기보다는 화장실 하나를 새로 만든 결과가 되었다. 지금부터 17년 전에 구식 낡은 집을 헐고 새로 지으면서 당시만 해도 현대식으로 잘 짓는다고 짓고 지금껏 별 불편 없이 살아왔다. 그러나 요즘 짓는 주택에 비해서는 한 참 낙후된 것이다. 화장실도 아직은 사용할 만하지만 상대적으로 불편 감을 느낄 뿐이다. 그래서 좌변기와 샤워기 정도 교체할 요량으로 수리를 전문 업자에게 의뢰해서 시공을 하다 보니 계회대로 되지 않았다. 당초 내 계획대로 했더라면 갓 쓰고 양복 입은 꼴이 되었을 것이다. 2평도 채 안 되는 좁은 공간이지만 화장실 내의 각 설비물들이 한 세트가 되어 조화를 이루니 볼품도 있고 사용에도 편리해 좋기는 하나 멀쩡한 기존의 설비물들을 가차 없이 뜯어 버린 것이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젠 외국을 나가 봐도 우리나라의 화장실은 어디에 있건 정말 명품이라 할 만큼 잘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지난 시절, 어렵게 살 때는 세트가 다 무엇인가. 필요한 것 단 한 개만이라도 있으면 가져다 쓰기에 바빴다. 이런 상황이니 디자인이나 편리성 같은 것을 추구할 여력조차 없었다. 경제의 발달은 삶을 윤택하게 해 주고 마음의 여유에서 오는 감각 수준도 높아져 집을 지어도, 실내 장식을 해도, 가구를 들여 놓아도, 고급화 하고 편리성과 함께 세련된 디자인으로 멋을 나타낸다.
  ‘말 타면 종 부린다.’는 속담처럼 삶의 상향은 있어도 하향이 된다면 큰 충격이다. 그러나 분별없는 세트화 고급화가 사치로 치달을까 염려도 된다. 소득이 3만 불, 4만 불이 되어도 검소의 정신만은 남아 있어야 할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세트 시대에 살고는 있지만 요즘 경제 위기설이 나도는 게 왠지 마음에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