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마이카’시대는 왔건만

문석흥 2013. 11. 30. 11:41


‘마이카’시대는 왔건만


  요즘은 차가 너무 많구나 하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산다. 큰 도로가에는 허용된 지역 외에는 주차가 금지되어 있어서 함부로 주차를 할 수가 없다. 또 요소요소 마다 감시카메라가 있어서 잘 못 세워 놓았다가 찍히는 날이면 어김없이 벌과금 통지서가 날아온다. 그래서 어쩌다 큰 길 가에 세워둔 차를 보면 차 번호판 앞에 널판을 세워놓은 진풍경도 본다. 그러다 보니 주택가 이면 도로에는 어김없이 차량들이 도로 입구에서부터 끝나는 데까지 일렬로 서 있고 좀 넓은 도로에는 양쪽으로 늘어 서 있다. 이런 도로에는 자연 교차가 어렵다 보니 간혹 차가 마주치다 보면 서로 비키라며 버티거나 더러는 싸우기도 한다. 또 대문 앞이나 가게 앞에는 어김없이 ‘주차금지’라는 표 딱지가 붙어 있거나 헌 타이어나 기물을 가져다 놓아 무단주차를 물리적으로 막고 있다. 아파트 단지 내에도 입구에 ‘외부차량 진입금지’ 푯말이 붙어 있고 어쩌다 주차했다가 걸리는 날에는 붉은 대각선이 그어진 ‘불법주차’딱지가 붙는다.
  이렇듯 주차난이 심각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차량이 많아서인가? 주차시설이 부족해서 인가? 어쨌든 이 둘의 균형이 맞지 않음은 분명하다. 한 때 차고지가 없으면 차를 구입할 수 없게 한 적도 있었다. 주차장만이 문제만도 아니다. 차가 굴러다닐 도로도 문제다. 그러나 도로망은 전국을 거미줄처럼 퍼져 있어 일일 생활권이란 말까지 나오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출퇴근 시간이나 주말, 휴가철이 되면 교통체증이 말이 아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우리나라의 자동차 역사는 6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 이전엔 일제가 남기고간 일제 차량과 6.25전쟁 이후 미군이 쓰던 군용 차량이 고작이었다. 그나마 많지도 않았으며 대부분 트럭이었고 극히 적은 수의 승용차도 고위층의 것이나 관용차 정도였다. 도심의 대로에도 우마차나 리어카, 자전거가 다닐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마이카(자가용)란 감히 꿈도 못 꿔볼 일이고 그것은 영화에서나 보듯 잘 사는 서양 사람이나 누리는 줄 알았다. 젊은이들이 결혼식을 하게 되면 군부대에서 후생사업이라는 명분으로 나와 영업행위를 하던 3/4톤 반 트럭(쓰리쿼터)을 하루 전세 내어 신랑 신부도 태우고 혼수품들을 운반하기도 했다. 또 장날이면 역시 후생사업으로 나온 트럭이 장꾼들과 짐들을 실어 날랐다.
  그러다가 1955년도에 우리나라 최초의 국산 승용차 ‘시발’이 나왔고 1962년도에 ‘새나라’에 이어 ‘포니’가 나왔다. 그나마 많이 보급되는 않았다. 1985년도에 현대에서 ‘포니2’를 생산하여 최초로 수출의 길을 연 것이다. 그 후 ‘엑셀’, ‘르망’, ‘프라이드’ 등의 소형차들이 등장했다. 아마 장년층 이상 사람들은 이런 차종의 이름이 떠오를 것이다. 이때부터 마이카의 꿈이 서서히 일기 시작해서 지금은 마이카가 꿈이 아닌 필수품이 된 것이다.
  국토해양부 자료에 의하면 올 3월말 현재 등록된 차량대수가 1,902만863대이며 인구 2.7명당 1대 꼴로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년 말까지 1,950만 대를 예상하고 있으며 2015년이면 2천만 대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마도 인구 증가율보다 차량증가율이 더 높은 게 아닌가 한다. 가구당으로 보아도 차가 없는 집이 거의 없을 정도이고 한 가구에 2대 이상인 집도 쉽게 볼 수 있다. 이러니 주차난이 아닐 수 없다. 이쯤 되면 지자체에서도 단속만 할 게 아니라 주차문제 해결을 위한 보다 적극적인 대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많은 예산이 따르겠지만, 도심에 여러 곳에 도시형 공용주차 시설을 늘려감도 주차문제를 해소할 뿐더러 시민을 위한 복지정책이 될 수도 있지 않을 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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