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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추억

문석흥 2013. 11. 28. 17:11

일 년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각기 그 계절의 특성을 잘 들어내, 계절마다 느끼는 감각과 그에 따른 삶의 즐거움을 골고루 맞으며 사는 것도 이 땅에 태어난 축복이 아닌가 한다.   
겨울이 오면 어린 시절 얼음판에 나가 또래들과 어울려 팽이치고 썰매 타던 일이 떠오른다. 추운 날씨인데도 장갑도 없고 신발은 차가운 고무신 이었지만 노는데 팔려서 손이 시린지 발이시린지도 잘 못 느꼈다. 밖에서 들어오면 더운물에 손발조차 제대로 씻지를 못했으니 손발에는 늘 때 켜가 앉고 핏빛이 보일 정도로 트고 동상이 겨우내 걸려 있었다. 저녁에 따뜻한 방안에 앉았노라면 트인 손등이 따갑고 동상 입은 손 발가락이 얼얼하고 아리고 근질거렸다.
  당시 어른들은 이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집에서 민간요법으로 치료를 해 주었다.   손이 튼 데는 돼지기름을 발랐고 손발가락의 동상, 그 당시는 얼음이 박혔다고 했는데 그 박힌 얼음을 빼는 방법으로 콩을 자루에 한 반 말 정도 담아서 추운 밖에다 한참을 내 놓았다가 방으로 들여와서 그 차디찬 콩 자루 속에 얼음 박힌 손과 발을 번갈아가며 박고 한참을 있는 것이다. 이 쯤 되면 손과 발이 더 얼어오고 나중엔 감각조차 없을 정도가 된다. 한참을 참고 견디다가 적당한 때 빼고 앉아 있으면 얼음 박힌 부분이 후끈거리며 무엇인가 살 속에서 녹아내리는 듯 했다. 콩자루 치료법 외에도 얼음이 둥둥 뜬 찬물을 대야에 담아다가 담그기도 했다. 이 민간요법이 주효했는지 겨울이 지나면 씻은 듯이 손발의 트임과 동상은 없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참 황당한 치료법이었지만 아마 이냉치냉(以冷治冷)의 효과라고나 할까 참 신통한 일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손발이 트거나 동상 입은 것을 볼 수가 없다. 대부분 난방이 잘 된 실내 놀이 시설에서 여러 가지 빙상운동이며, 컴퓨터 게임을 즐기다 보니 차가운 북풍한설 속에 노출될 리가 없다. 게다가 온 냉수를 어디서나 부족함 없이 사용하여 몸을 정결히 하고 방한 보온이 잘 된 의복으로 무장하였으니 추위를 느낄 수가 거의 없다.   
  지금에 비해 지난 시절의 겨울은 너무도 추었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학교에서도 온통 추웠던 기억뿐이다. 주택이나 건물 구조도, 난방 형태도, 의복도 추위를 막기에는 모두가 부실했다. 난방을 위한 연료는 오직 나무와 연탄뿐이었으나 그나마 풍족하질 못해서 늘 춥게 지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석유와 전기 덕에 춥지 않은 겨울을 보내며 주택이나 건물도, 의복도, 옛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고급화 되고 계절의 영향 없이 각종 문화의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삶인가.   그러나 그 석유의 과다 사용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지구를 온난화 시키고 그로인하여 지구환경이 바뀌고 기상 이변으로 인류는 엄청난 재앙을 맞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고는 작금의 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만약 사계절이 뚜렷했던 이 땅에도 온난화의 영향으로 겨울이 따뜻한, 아열대성 기후로 바뀐다면 ‘쓰나미’ 같은 엄청난 해일과 여름철엔 살인적인 폭서가 찾아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그런 이변이 올 것도 아니지만 너무도 끔찍스런 일이기에 믿고 싶지도 않은 심정이라 피안의 불로 여겨질 뿐이다.   
   올 해도 변함없이 겨울을 맞이했다. 겨울철이 오면 얼어붙은 강위에서, 마을 앞 논 얼음판에서 팽이치고 썰매 타고 스케이트 타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그러나 요즘의 겨울 들녘과 강에는 얼음판도 없고 젊은이들의 온기와 생동감도 없다. 오직 설한의 삭풍만이 몰아치고 있음이 못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