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情)이 병(病)이 되어
산악인들은 ‘산이 그 곳에 있으니 산에 오른다.’라고 한다. 우리네 보통 사람들은 ‘안방에 텔레비전이 있으니 그것을 본다.’라고 해도 될는지? 어쨌든 집에 있다 보면 텔레비전을 켜게 된다. 바보상자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텔레비전은 여전히 집안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상석에 확고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뉴스는 필수 과목처럼 꼭 보고 그 다음 선택과목처럼 보는 것이 있다면 어른들로서는 연속드라마이다. 연속드라마, 다 그렇고 그런 거지 하면서도 여전히 보게 되니 그래서 하나 끝나면 바로이어 또 다른 게 시작되는가 보다. 우리나라 연속드라마는 대부분 가족멜로드라마이며 소재도 주제도 비슷한 게 많다. 특히 요즘은 각 방송사의 드라마가 거의 비슷비슷한 주제이기에 혼동이 올 정도다. 부잣집에 며느리나 사위가 되어 멸시 천대 받는 내용, 부모들의 과거의 문제로 해서 자식들 간의 열렬한 사랑이 비극으로 몰리는 내용들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민법상 만 19세 이상이면 성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부모들은 내 자식에 관한 한 끝까지 내 뜻대로 해야 한다는 고정관렴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자식을 위하는 부모 마음은 동서고금,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다 똑 같다. 그렇지만 우리의 부모들은 좀 심한 것 같다.
드라마가 아닌 실생활 속에서도 지독하리만큼 자식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교육면에서도 그렇고 혼사 문제와 혼인 후에 사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다 챙기고 간여한다. 자식들의 의지와 판단대로 하는 게 거의 없다. 그래서 ‘마마보이’라는 말까지 나오질 않았는가?
텔레비전에서 ‘미녀들의 수다’라는 프로그램을 가끔 본다. 여기에는 우리나라에 와서 유학을 하거나 사업상 와 있는 세계 각 국의 젊은 아가씨들이 출연하여 그때그때 한 가지 주제를 놓고 남희석의 사회로 자유 발언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에서 어느 나라 아가씨인가 하는 말이, 한국의 부모들은 참 이상하다는 것이다. 대학생이 된 자녀들의 학비도 대주고 결혼도 부모가 시켜주고 집도 사주고 생활비도 대 준다는 것이다. 자기네 나라 부모들은 20세만 되면 일체 간여하지 않으며 본인들이 알아서 해결한다고 한다.
짐승들도 보면 새끼를 낳아서 키우는 동안은 어미가 목숨을 걸고까지 새끼를 철저히 보호하고 거두지만 일단 자립할 정도로 자라면 냉혹하게 쫓아낸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자기가 낳은 자식을 정성껏 키우고 보호하는 것은 당연하고 또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한계는 두어야 할 것 같다.
자식에 대한 정(情)이 너무 지나쳐서 오히려 병(病)이 되어 ‘기러기 아빠’가 되고 ‘오렌지 족’이 되며 생활비를 초과하는 사교육비에 시달리는 우리의 현실을 극복하는 길은 없는 것인지. ‘미녀들의 수다’에서 어느 외국인 아가씨가 한 말이 가끔씩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