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필

가을과 은행나무 가로수

문석흥 2021. 10. 3. 16:29

가을과 은행나무 가로수

 

 

문 석 흥 / 文 錫 興

msh5@hanmail.net

 

 

  청량한 날씨와 푸르디푸른 드높은 하늘, 울긋불긋 오색의 단풍, 이것이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더 없는 가을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그 중에서도 특히 도심에 사는 사람들은 가을이 되면 가로수의 노랗게 물든 부채 모양의 은행잎에 한없이 매료된다. 나뭇가지에 수북이 달려 있을 때도 그렇고 낙엽으로 우수수 떨어져 온통 노란색으로 보도를 뒤덮어 그 위를 밟고 걸어가는 기분이야 도심에서 어디에 더 비하랴. 은행나무의 낙엽은 쉽게 사그라지지도 않아서 오래도록 그 정취를 느끼게 해 준다. 어린 시절 노랗게 물든 예쁜 은행잎을 주어다가 책갈피 끼워두었던 기억이 누구에게나 다 있었을 것이다.

  어느새 가을에 들어섰지만, 가로수의 은행잎은 아직은 짙은 노란 물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은행 열매는 벌써 노릇노릇 익어 더러는 인도에 떨어져 사람들의 발길에 밟혀 흉한 모습으로 일그러져 악취를 풍기고 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새벽이면 사람들이 장대를 들고 나타나 채 영글지도 않은 은행을 털어서 쓸어 담아 가곤 했는데 요즘은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아마도 자동차 매연으로 인한 중금속 물질의 오염되었다는 소문에서일까? 아니면 무단 채취로 인한 처벌이 두려워서일까?

  은행나무는 자웅이주(雌雄異株)라해서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어서 암나무에는 암꽃이 피고 수나무에서는 수꽃이 피어 자연 은행열매는 암나무에서만 열리게 된다. 꽃은 5월에 피지만 작고 색깔도 엷은 녹색이라 잘 보이지도 않고 볼품이 없다 암나무 수나무가 따로 서 있어도 수꽃의 꽃가루가 암꽃에 수분되려면 바람에 날려서 운반되기 때문에 풍매화라 한다. 그래서 은행나무는 마주보고 있어야 열매가 맺는다고 했다. 이에 비유하여 사람도 마주 보고 대하여야 인연이 깊어진다고 한다. 예부터 은행나무는 천심을 하강시키는 신목으로 여겨 관가나 서당, 향교의 뜰이나 마을 어귀에 심었다. 그래서 지금도 시골에 가면 옛 면사무소 마당, 서당이 있던 자리 그리고 역사 오랜 초등학교 운동장엔 어김없이 오래된 은행나무를 볼 수 있다.

  은행 열매의 겉 부분을 싸고 있는 노란 과피는 악취와 독성이 있어서 먹을 수 없고 우리가 먹는 부분은 과피 가운데에 씨에 해당하는 딱딱하고 흰 껍질 속에 있는 부분인데, 열에 익히면 연두색의 연한 육질로 변하여 존득존득해서 씹는 맛과 담백한 맛이 어울려 얼마든지 먹어지는 묘미를 가졌다. 게다가 은행은 진해 강장의 보약이 되기도 하고 야맹증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은행잎에는 혈액순환제의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이 성분을 추출하여 혈액순환의 효능이 있는 의약품을 생산하기도 하고 뿌리 또한 허약을 보하는 약제로도 쓴다한다. 이토록 은행나무는 자체 각 기관이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유익함을 주는 좋은 나무이다.

  나무 자체로 보아도 지구상에 현재 생육하고 있는 나무 중에서는 지구의 생성 과정인 지질시대의 고생대 말기서부터 빙하기를 거쳐 지금까지 살아남은 최 장수 수목의 하나이다. 나무의 모양도 수려하여 품위도 있고 여름철에는 녹음을, 가을에는 아름다운 노란색 단풍과 맛있고 약효도 있는 열매를 제공하며 병충해도 없다. 그러기에 가로수로는 더 없이 좋은 조건을 가진 나무이다. 다만 흠이 있다면 떨어지는 열매에서 악취가 난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어느 도시에서는 시민들이 그 냄새 때문에 가로수 교체를 주장한다고도 한다. 이처럼 다 좋은데 단지 그 열매에서 나는 악취가 문제다. 원래 은행나무는 꽃이 피거나 열매가 열리기 전에는 암 수 구별이 쉽지 않다. 그런데 최근 산림과학원에서 DNA를 분석하여 은행나무의 암나무와 수나무를 조기에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냈다 한다. 앞으로 도시의 가로수용으로는 열매가 맺지 않수나무를 심고 농촌지역에는 열매가 맺는 암나무를 심어 수익성을 올릴 수도 있는 좋은 해결책이 나울 것 같다.

  신은 세상 만물을 창조함에 어느 한 개체에게 장점만 다 갖추어 주지 않고 장점 단점을 다 준 것 같다. 사람도 보면 인물이 잘 났으면 재능이 좀 부족하고, 재능이 출중하면 신체가 허약하고, 마음은 한없이 어질고 착한 반면 재물 복이 없고, 한편 성격이 포악하고 독선적인데도 재물 복을 타고난 사람도 있다. 이처럼 골고루 다 좋게 갖춘 완벽한 사람은 거의 없다. 다른 동물이나 식물의 경우에도 이와 같은 모양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본다.

  신이 개체 개체에게 완벽함을 안 준 것은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면서 형평을 이루며 살아가라 뜻이 담긴 것이 아닐까 한다. ( 2014 겨울호 에세이21)

 

'수 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억의 주전부리  (2) 2023.03.10
휴대전화  (0) 2022.08.17
코로나19 속에 보낸 추석명절  (0) 2021.07.21
겨울의 추억  (0) 2021.01.11
금연시대  (0) 2020.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