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필

기도하시겠습니다-發

문석흥 2013. 11. 30. 05:23

기도하시겠습니다-發


                                                           문     석     흥

  비가 제법 쏟아지듯 내리는 아침이었다. 비오는 날 아침이면 출근길이 더 바쁘고 출근을 해서도 여유가 없다. 대부분 직원 조회 시간에 겨우 맞춰오기 때문이다. 직원 조회는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에누리 없이 실시한다. 그리고 모든 회의나 행사에는 서두에 반드시 기도로 시작된다.
  이날도 직원 조회 선언이 있고 나자 교목 선생님이 “오늘 기도는 교무주임 선생님이 하시겠습니다.”라고 통고 했다. 무두들 눈을 감고 머리 숙여 침묵하고 있는 가운데 교무주임 선생님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청명한 날씨를 주시고 부족한 저희들을 이 교단에 세워 주셔서 어린 생명들을 가르치게 하여 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이렇게 교무주임 선생님의 대표 기도가 엄숙하게 이어 가는데 어디선가 ‘킥’하며 터지는 웃음을 참는 소리가 났다. 이어서 동시다발로 폭소가 터져 나오면 어쩌나 하고 조마조마 했는데 그런 일 없이 다행히 잘 넘어 갔다.
  기도가 끝나고 간단한 업무연락으로 직원조회는 무사히 마쳤다. 높은 분들이 직원실을 떠나자 고요했던 직원실 안은 갑자기 여기저기서 참았던 웃음이 터져 나오며 시끌벅적 해 졌다. 몇 익살꾼 선생님들이 교무주임 선생님을 향해 “지금 밖에는 비가 오는 데요!” 라고 하며 농담을 걸었다. 교무주임 선생님은 처음에는 무슨 영문인지조차 모르고 어정쩡한 표정으로 “왜들 그래!”만 연발했다. 드디어 교무주임 선생님이 감을 잡았는지 교무수첩을 열고 조회에서 했던 기도문을 꺼내 보고는 비로소 멋쩍은 웃음을 띠며 하는 말이, “기도문을 잘 못 골랐네.”라고 했다. 교무주임 선생님은 좀 연로 하신 편이었는데 술을 좋아 해서 그날 아침도 작취미성 상태였던 것 같았다.
  하긴 웬만큼 교회생활을 하지 않은 사람은 사전 준비 없이 갑자기 대표기도를 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래서 자신 없는 선생님들은 미리 당일 분의 기도문을 작성해 둔다. 또는 여유 있게 여러 장 작성해서 교무수첩 갈피에 끼워 두거나 책상 서랍에 넣어 두었다가 차례가 오면 그때 상황 따라 적절한 것으로 골라서 순환 식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기도는 교목선생님이 순서표를 사전 작성해서 전 직원에게 배부해 준다. 이 기도 순서표를 보고 미리 자기 차례 날을 잘 기억해 두어야 한다. 만약 깜빡 잊고 있다가 즉석 통고를 받고 그때서 기도문을 찾다 보면 미쳐 선택할 겨를도 없다. 다급한 마음에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기도문이나 꺼내 읽다 보면 교무주임 선생님 같은 실수를 부를 수가 종종 생기게 된다.
  가끔은 기도문조차 사전에 준비해 두지도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자기 차례임을 통고 받고 당황한 나머지 얼결에 ‘하나님 아버지!’까지만 시작해 놓고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하고 진땀을 흘리며 침묵의 시간만 보내는 경우도 있다. 이를 알아차린 교목선생님이 대신 기도를 해서 이 안타까운 순간을 모면하기도 한다. 또 어떤 선생님은 직원 조회 시간이래야 10분간 밖에 되지 않아, 1분 전후한 시간으로 간결하게 해야 하는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길게 해서 업무연락도 제대로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이 기독교계 학교는 일반 학교와 다른 점이 있다. 설립목적에 부응하는 교육을 위해서는 우선 교사 채용에 있어서 기독교 신앙인을 우선한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소속 교회 담임 목사의 추천서나 교적증명, 세례증명 같은 서류도 첨부해야 한다. 면접 과정에서도 신앙 관계는 필수 사항이다. 교과목상 부득이한 경우에 비신자 교사를 채용할 때에는 반드시 기독교 신앙을 가지겠다는 다짐을 받는다. 그리고 학교에서 시행하는 모든 종교 활동에 필히 참석해야 하고 이를 거부하거나 반대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매주 한 번 있는 교직원 예배시간에도 반듯이 참석해야 한다.
  이렇게 외형은 갖추지만 하루하루 지나다 보면 개개인의 내면이 들어나게 된다. 기독교 신앙을 전혀 가지지 않은 사람, 가졌다하더라도 많이 세속화 된 사람, 심지어는 타 종교를 가진 사람, 그리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사람 등, 위장형僞裝型과 순수형純粹型으로 구분 된다. 그렇지만 살고자 찾아 온 사람들인데 어쩌랴. 그래도 함께 살도록 관용을 베푸신 이사장님이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다.
  그런 속에서도 함께 살다 보면 첫째도 예수, 둘째도 예수인 순수형 선생님 보다는 술도 좀 마시고 우천雨天을 청천晴天으로 둔갑시키며 기도하는 위장형 선생님이 있어 가끔씩 건조한 분위기를 촉촉이 적셔 주기도 한다. 그러기에 세상은 무두가 다 일색으로만 되어 있지 않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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