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 손녀 보는 ‘로버트 할머니’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은 전부터 있어왔지만, 이미 이 말은 실감하고 살고 있다. 6·25전쟁 때, 처음 보는 미군들의 군수 물자와 군용장비들을 보면서 눈을 의심할 정도로 놀랍고도 신기함을 느꼈다. 육중한 적재함을 자유자재로 치켜 올리고 내리고 하는 덤프트럭, 산을 깎아내리고 흙더미를 밀어내는 불도저, 사람의 팔과 손의 역할을 그대로 해내며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포클레인(굴삭기) 이 세 괴물 같은 장비들의 작업하는 모습을, 온 동네 사람들이 나와 넋을 잃고 서서 구경하던 일이 떠오른다. 이 세 장비의 엄청난 힘과 그 작업량은 삽과 곡괭이, 지게, 우마차가 고작인 양 여겨 왔던 이 땅의 주인들로서는 경이와 감탄을 금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이 세 장비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처녀지나 다름없는 이 강산에 많은 변화를 가져 왔다. 고속도로, 해안 방조제와 간척지, 신도시와 아파트 등 건설 분야에 많은 공헌을 했다.
이뿐이랴, 이제는 강산은 말고도 우리가 사용하는 각종 생활용구나 기계류 등 각 분야에서 구태여 10년이라는 한계를 불문하고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물품들이 쏟아져 나와 우리의 삶을 얼마나 편리하게 해 주고 있는가.
초등학교 때, 이과(지금의 과학과목)시간에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앞으로 인간의 두뇌 계발로 과학 발달이 되어 각종 자동화된 기계나 생활용품이 나와 사람들이 지금처럼 육체의 힘으로 일하지 않아도 기계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 주는 세상이 온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두뇌만 쓰기 때문에 머리는 커지고 반면 자동화 덕분에 잘 쓰지 않는 팔다리는 퇴화하여 작아지고 힘도 약화할 것이라고 했다. 그 선생님의 말씀대로 지금 엄청난 과학 발달은 되었으나 아직은 인간의 외형이 작아지기보다는 오히려 장대해진 것 같다. 이도 역시 의학의 발달과 식생활 개선에서 온 결과가 아닐까 한다.
며칠 전 조선일보에 ‘3대代캥거루’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노부부가 아들 결혼시키고 집 사는 거 도와주면 자식농사 끝인 줄 알았는데 아들 내외가 맞벌이 하면서 쌍둥이까지 낳는 바람에 꼼짝없이 집에서 손자들 보고 있다는 것이다. 거기다 분유 값, 기저귀 값으로 한 달에 50원만 원씩 대준다는 것이다. 아들 결혼시키고 나서 평생 못해본 골프도 치고 해외여행도 하겠다던 꿈은 사라지고 결국, 자식과 손자 손녀까지 등에 업고 사는 ‘3대 캥거루’가 되었다는 것이다.
과학 발달로 인간의 두뇌 기능을 일부나마 가진 로버트가 나오고 있다는데, 좀 더 완벽한 인간 로버트가 나와서 손자 손녀를 친 할머니 못지않게 잘 봐주는 ‘로버트 할머니(?)’가 탄생되지는 않을는지?
부질없는 망상이겠지만, 이 시대에 와서 ‘3대 캥거루’ 현상을 보면서 우리는 왜 이렇게 늙도록 고달프게 살아야 하는지, 그것이 한스러워서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