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문석흥 2013. 11. 30. 09:47




  ‘빽’이라는 말은 원래 영어의 ‘back'에서 기인한 외래어이다. back은 동물의 등이나 뒤 또는 배경이라는 뜻의 명사이다. 그러나 우리는 ‘빽’을 주로 배경 즉, 뒤를 봐주는 든든한 후원자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한다.
  지난 한 시대에 빽이 공공연히 성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6․25전쟁 때 군에 징집되어 일선에 나가 전투 중에 전사한 병사가 죽어 가면서 “빽!”하고 죽었다는 유행어가 있었다. 즉, “백”이 없어서 군대에 나와 죽어간다는 뜻이다.
   빽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권력 기관에 힘 있는 직위를 가진 친척이나 선배, 친구가 있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돈이다. 그러나 돈도 권력도 없는 사람은 빽 있는 사람에게 밀려 출세도 못하고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면서 사는 불공정한 사회를 한탄하면서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야 했다.
  독재와 부정부패의 상징이었던 과거 자유당 정권 시절에는 빽의 전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유당 정권은 결국 4․19혁명으로 무너지고 이어 5․16 군사 혁명을 거치며 어느 정도 불공정 사회 분위기가 사라지면서, “쌍팔년도(단기 4288년)에 좋았지….”라는 유행어가 나왔다. 이는 빽이면 다 해결된다는 자유당 정권 시절을 풍자한 것이다.
  지금은 민주화 시대가 되었다. 예전보다는 빽이 그리 쉽게 통하지 않는 공정 사회가 되었다고 보아도 될 만큼 사회 질서가 많이 잡혔다. 공직이나 사기업에서도 시험을 통한 공채가 제도화되었다. 장관도 국회 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요즘, 불거진 외교통상부 5급직 공채에 현직 외교장관의 딸이 특혜로 채용 된 것이 문제가 되어 장관이 이를 인정하고 사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뒤이어 전직 감사원장의 딸도, 대사들의 딸도 특혜로 채용되었다는 의혹을 받으며 문제가 되고 있다.
  더구나 정부에서 이제부터는 정부 고급 인력 채용에 그동안까지 고시 일변도의 채용에서 사회 각 계에서 전문 지식을 싼 인력을 고시 없이 면접으로 50%의 인원을 채용하겠다고 공표했다. 이런 시점에서 해묵은 빽에 의한 특혜 채용이 들어났으니 모처럼 정부의 야심 찬 우수한 사회인력 확보 계획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되지 않았는가. 그래서 새로운 5급 공채 계획을 백지화하는 사태가 온 것이다.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후진국으로 갈수록 흔히 있는 일이다. 옛날 왕조 시대에도 ‘음직(蔭職)’이라 해서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공로로 과거(科擧)를 거치지 않고 얻어지는 벼슬이 있었다. 즉, 생원․ 진사․ 유학․ 참봉 등이다. 그러나 이 음직은 일종의 빽에 의해 얻어진 벼슬이지만, 공식화된 벼슬이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의 일부 특채는 빽이 작용한 위장 공채가 아닌가.
  빽은 곧 인연으로도 통한다. 인연 하면 혈연․ 지연․ 학연 등 3연이 있는데 이 인연은 단순한 동질성을 떠나 때로는 빽으로도 깊숙이 작용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기에 예로부터 이 3연의 결속력은 전통적으로 이어져 온다. 종친회․ 향우회․ 동문 동창회 등은 대표적인 연의 조직체이고 이 밖에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발생한 동질성에서 비롯된 각종 친목회․ 연합회 등 조직을 통해 필요에 따라 상호 간에 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빽에 의존하는 의식이 뿌리깊이 박혀 있어서 규칙이나 법에 따라 정당하게 해결해야 할 일을 빽으로 해결하려는 게 관습화되다시피 되어 있다. 이것을 근본적으로 없애지 않는 한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를 만든다는 것은 공염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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