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문명의 역기능

문석흥 2013. 11. 30. 10:28

문명의 역기능


  ‘여보세요 미스 김 안녕 하세요 / 여기는 청파동 청년 박이요’로 시작해서 ‘닥쳐 올 일요일은 단둘이 만나/ 아베크는 대천바다 인천 월미도/ 젊은 날의 전화통신 즐겁습니다.’ 로 끝나는, 남 녀 가수가 1절, 2절을 각 기 나눠 부르고 3절은 같이 부르는 흘러간 옛 가요가 있다
  이 가요의 제목은 ‘전화통신’이다. 이 노래에서 사용했던 전화기는 벽면에 걸린 네모진 나무 상자 앞면에 따르릉 신호음을 내는 두 개의 작은 종지를 엎어 놓은 듯한 은색 도금의 철제 종이 왕 눈처럼 달리고, 그 아래는 나팔 통 같이 생긴 송화기가 앞으로 쑥 나와 있어서 마치 사람 얼굴 같았다. 상자 오른쪽 옆면 부부에는 역시 나팔처럼 생긴 검은 색 수화기가 긴 꼬리를 달고 걸고리에 걸려 있었다. 이 초기의 전화기는 요즘처럼 디지털식도 아니고 교환국을 통해서 상대편으로 연결을 시켜야 통하는 전화기였다.
  어린 시절, 도화지를 컵처럼 둥글고 길게 원통 두 개를 만들어서 한 쪽 면에 잘 울리는 얇은 종이를 붙이고 가는 실을 길게 늘여 양 쪽 원통 울림종이에 고착시키는 방법으로 작난감 전화를 만들었다.  두 사람이 실을 팽팽하게 느려 실 길이만큼 떨어져서 한 쪽 친구가 원통에 대고 말을 보내면 저쪽 친구는 원통을 귀에 대고 저쪽에서 보내오는 소리를 가늘 게 나마 들으며 서로 신기 해 하면서 전화놀이를 했다.
  그러나 이 작난감 전화기에서도 전화의 원리가 있었던 것이다. 소리는 여러 물질을 타고 옮겨진다는 원리다. 그래서 전화기를 최초를 만들어 발명 특허를 받은 ‘벨’은 이 원리를 이용하여 전선을 통해 음성을 전송하는 장치를 발명한 것이다. ‘벨’이 처음 전화기를 발명한 것은 1976년이다. 우리나라에는 그로부터 6년 후 실험용으로 들어 왔다는 기록은 있으나 공식적으로 최로 개통한 것은 고종황제 시절 1895년에 서울 인천 간 시외전화가 먼저 개통되었다 한다. 그 다음에 시내전화 교환소가 생김으로서 시내전화가 개통되었다 한다.
  그러나 전화가 생활화 된 것은 1960년대에서부터다. 우리가 기억하기에도 이 당시 전화기는 관공서나 특수기관, 고위층 집에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처음 일반에게 공급 당시는 회선이 부족하여 선착순 청약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전화국 앞에 새벽부터 줄을 서야했고 심지어는 늦은 밤부터 전화국 앞에 돗자리를 깔고 담요를 쓰고 앉아 밤을 새우기도 했다.
  그것도 처음에는 교환전화기였고 그 후에는 다이얼 전화기로 그 다음은 디지털전화기로 바뀌어 갔다. 교환전화기 시절에는 시외전화는 미리 신청을 해서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휴대전화에 스마트폰까지 나와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음성통화는 물론, 온갖 정보와 통신 수단이 다 단말기를 통해 손안에서 이뤄지지 않는가. 걸어가거나 전철이이나 버스 안에서도 젊은이들은 심심치가 않다.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눈은 단말기를 보며 손가락은 검불 날리듯 쉽게 움직인다. 손안에 작은 단말기 속에는 4천만 인구의 삶과 이야기가 있고 수만은 영상들이 전개된다. 젊은이들이 너무 심취해 있기에 목 신경에 위험이 있다고 의사들이 경고할 정도다.
  이런 문명의 이기들은 우리의 삶을 즐겁고 윤택하게 해준다. 그러나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듯이 역기능도 없지 않다. 요즘 SNS를 통해 분별없이 퍼져나가는 괴담들, 인신공격 등은 우리사회의 기본 질서를 흔들고 이념, 가치관의 혼란을 일으키고 있음은 지극히 염려스런 일이다.
  문명의 이기가 오히려 역기능으로 우리를 위협해 오고 있으니 그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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