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리 드라마라지만 TV가 우리 곁에 등장한 것은 1960년 대 쯤으로 여겨진다. 처음에 나왔을 때는 흑백 TV로써 요즘처럼 납작한 벽걸이용 컬러TV도 아니었다. 뒤쪽으로 길게 나온 4면체모양으로 작은 것은 9인치, 16이치, 좀 큰 것은 21이치 정도였다. 그 디자인도 좀 고급품은 나무상자로 겉면이 덧 씌워진데다 네 다리로 받쳐져 있고 스크린 쪽은 자바라 문으로 여닫게 되어 잠금장치까지 있었다. 그나마도 시골 농촌 지역에는 좀 잘 산다는 집 한두 집에만 있을 정도로 귀했었다. 그 이전에는 귀로만 듣던 라디오 시대였다가 영상으로 실존 인물이나 사물들이 생동감 있게 나타나는 TV야 말로 처음으로 대하는 순박하고 무지한 농촌 사람들로서는 신비스런 요물로 인식할 정도였다. 당시 프로그램 중에 가장 인기 있었던 것으로는 레슬링 경기와 권투경기 그리고 연속 드라마였다. 이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시간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TV 있는 집으로 모여들어 그야말로 안방극장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온 집안이 동네 관객으로 그득했다. 그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HD 고화질의 대형 TV로 지상파 공중파 해서 채널이 수 십 개나 될 정도로 엄청난 발전을 가져왔다. 프로그램도 요즘에 와서는 레슬링이나 권투 경기 프로는 없어졌고 연예 오락프로나 드라마가 많다. 그중에도 드라마는 연령 계층을 막론하고 여전히 인기를 독점하고 있지만, 요즘 드라마를 보면 처음보다는 내용면에서 너무 달라진 모습을 본다. 드라마는 원작 자체가 허구이긴 하겠지만, 그렇다 해도 요즘 드라마는 우리의 전통 관습이나 윤리면서 볼 때 너무 지나친 면이 많은 것 같다. 부유층 집안의 아들이 애 딸린 연상의 이혼녀를 아내로 맞겠다고 해서 부모와 심한 갈등을 겪는다든가, 어릴 때 두고 나온 딸이 장성해서 얼굴 모습조차 기억할 수 없는 생면부지의 처녀를 아들의 애인으로 알고 며느리로 맞게 된다든가, 한 종가 댁 과부 며느리 동서 둘이서 우연찮게 어느 재벌 집 아들 형제와 인연이 되어 우여곡절 끝에 둘이 함께 동서의 순위가 뒤바뀐 채 새 며느리가 된다든가, 친 오누이 사인인데 어떤 사연으로 해서 어려서 헤어져 서로 모르는 사이로 만나 연애가 되어 깊숙한 사랑에 빠졌다가 뒤 늦게 사실이 밝혀져 고민하는 하는 내용 등…. 이런 일이 현실적으로 있을 수 있는 현실 상황으로 끌고 가는 작품 내용을 보면서 이 사회의 윤리 기준이 과연 이 정도까지 이르렀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물론 드라마니까 그럴 수 있다고 하겠지만, 아무리 드라마가 허구라 할지라도 이런 내용이 TV를 통해서 전국의 각 가정의 안방으로 방영되어 계층 불문하고 여과 없이 자연스럽게 시청한다는 점이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은 자칫 드라마 내용 자체를 현실감 있게 받아들인 수도 있지 않겠는가 싶은 생각도 든다. 드라마 각본이나 소설 등은 분명 허구이긴 하지만, 그래도 현실을 가상한데서 작품이 써지는 게 아닌가 한다. 하긴 초기의 드라마에서는 남녀 간의 사랑 표현도 결정적인 장면은 노출시키지 않고 적절히 가려서 시청자의 상상에 맡기는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입맞춤 정도는 예사로울 정도고 베드신도 상당 수준으로 노골화 되다시피 되었다. TV를 바보상자라고 까지 폄훼하기도 하지만, 이젠 알게 모르게 대중의 생활 속에 깊숙이 파고들어 사고방식이나 가치관 형성에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미풍양속에 오염이 되지 않을까함이 염려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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