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필

가을의 단상

문석흥 2023. 3. 11. 18:43

가을의 단상

 

 

  계절의 변화처럼 분명한 것은 없는 것 같다. 불과 며칠 전 까지만 해도 따가운 햇볕이 싫어서 그늘진 길 건너편 보도를 일부러 건너가서 다녔는데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때문에 이젠 볕이 드는 쪽 보도를 찾아 걷게 된다. 지난여름 더위는 우리나라 기상관측상 최고로 더웠다는 기록답게 가을의 문턱이라는 입추를 지나 처서도 지나고 추석을 지나서 까지도 버티더니 추분을 지나서야 겨우 자취를 감추고 뒤늦게 선선한 초가을을 맞이하게 했다. 이상기온이요 지구온난화현상이요 해서 간혹 제 철답지 않게 폭우나 폭설 강풍 혹한 등 계절특성과는 관계없는 기상 이변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것은 그때뿐이요 사계절의 변화 주기나 계절의 특성까지 근본적으로 그 질서를 잃는 법은 아직까지는 없다.

  일 년 사계절 중 가장 좋은 계절을 택하라면 사람마다 각기 다르겠지만 대체로 가을을 택할 것 같다. 가을의 좋은 점을 이루 다 말 할 수는 없겠지만 우선 체감으로 느끼는 기온이 좋고 다음은 푸르고 드높은 하늘과 맑은 공기 그리고 산과 들의 각 종 수목과 잡초에 이르기까지 그 나름대로의 간직했던 고운 색깔들을 드러내 전체가 아름다운 자연의 조화를 나타냄이다. 긴 여름동안의 폭서와 장마 속에 시달렸던 지친 육신인인지라 이렇게 찾아준 이 천사 같은 가을이 더없이 반갑고 보내고 싶지 않아 한 순간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은 간절한 심정이다.

  특히 가을철 하면 곱디고운 단풍을 보며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단풍에 매료되어 산을 찾는다. 가을 중에서도 늦가을에 단풍은 최고의 아름다움을 뿜어내며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황홀경에 젖어 들게 해 준다. 또한 가을은 온천지가 티 없이 맑고 고움 속에 어디든지 떠나고 싶고 누구와도 만나면 차라도 마시고 술이라도 한 잔 나누며 정담을 나누고 싶은 충동을 받는다. 그러면서도 떨어지는 낙엽이 스산한 바람에 이리저리 딩구는 모습을 보면서 적막과 고독감을 느끼면서도 다가가고 싶은 구심력에 빨려들게 한다.

  따뜻하고 화사한 날씨지만 변덕이 심한 봄, 싱싱한 녹음을 주지만 더위로 고통을 주는 여름, 백설의 정결함과 그 운치는 일품이지만 북풍한설로 몸과 마음을 움츠리게 하는 거울, 이 계절에서 풍기는 느낌은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듯싶다. 속설에 봄은 수줍음을 지닌 처녀로, 여름은 풍성하고 정이 넘치는 어머니로, 가을은 고독한 미망인으로, 겨울은 냉랭한 계모로 비유하기도 한다. 사람도 늘 함께 있어주었으면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젠 좀 떠나 주었으면 하는 사람이 있듯이, 일 년 사계절과는 필연 적으로 만나며 살아야 하지만 여름과 겨울은 만나기 싫은 게 나의 심정이다. 기다려지고 만나면 보내고 싶지 않은 가을, 그러나 보낼 수밖에 없는 가을이기에 더 정겹고 아쉬운 마음이다.

  이 낭만과 서정이 흐르는 좋은 계절에 최진실이라는 한 여인이 몰고 온 국정농단 사태로 온 국민에게 실망과 분노를 안겨다 준 것이 못내 원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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