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필

조문(弔問)의 의미

문석흥 2023. 3. 11. 16:00

조문(弔問)의 의미

 

 

  사람은 정온동물에 속하기 때문에 늘 일정한 체온(36.5)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추위와 더위에 따라 체온을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이 있어서 늘 일정한 체온을 유지하고 있거니와 외부 기온 변화에 따라 의복이나 냉난방 시설을 통해서 인위적인 체온 조절을 한다.

  그러나 노약자나 환자들은 건강 상태가 정상이 아니어서 체온의 자율 조절 능력이 떨어져 고열이나 저체온 증세가 나타나 생명의 위험이 닥치기도 한다. 특히 노인들은 근본적으로 체력이 약해져 있는 상태라서 심하게 추울 때나 더울 때는 매우 위험하다. 그래서 한 참 추운 고비나 더운 고비에 노인들이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다.

  올여름 들어서면서도 몇 차례 노인 빈소에 조문을 다녀왔다. 요즘은 장례식장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서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지만, 장례식장이 없던 지난 시절에는 집에서 장례를 치러야 했다. 그 더운 여름철에 3일장이고, 5일장이고 집에서 치른다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다. 특별히 방부 처리를 할 수 없다 보니 시신이 부패하는 경우도 있고 조객들을 접대하는 음식도 부패하여 식중독 사고도 종종 나기도 했다. 게다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유교식 장례법에 따라 격식을 갖추어 치르려니 무리가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비하면 요즘 장례식장은 위생적으로 시설이 잘 되어 있고 조문 절차나 조객 접대, 운구 등 얼마나 간결하고 편리한가. 그러나 장례 절차에 있어서는 좀 더 개선할 여지는 있다. 친불친 가릴 것 없이 조금만 인연이 있다 하면 무조건 전하고 보는 부고, 수많은 조화와 여느 잔치 못지않은 음식 접대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초상집과 결혼식에는 사람이 북적대야 한다는 옛 사고방식은 이젠 좀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속담에 대감 말죽은 데는 가도 대감 죽은 데는 안 간다.’라고 했다. 이는 아첨꾼들이 대감 살았을 때는 충성심을 나타내려고 눈도장을 찍기 위한 행위일 뿐, 막상 그 대감이 갔으니 이젠 소용없다는 얄팍한 속셈을 풍자한 것 아닌가 한다. 그러나 꼭 그런 뜻에서 보다도 평소에 절친하게 지냈던 사람이 죽었지만, 망인과만 친했을 뿐, 유가족들과는 전혀 일면 불식인 사이라면 빈소에 찾아가 영전에 조상(弔喪)하고 나서 전혀 생면부지의 상주들과 문상(問喪) 한다는 것이 아무래도 어색하고 조문(弔問) 온 의미가 상실됨을 느낀다. 그리고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쓸쓸히 혼자 앉아 주안상이라도 받고 있노라면 더욱 편치 않은 자리일 수밖에 없다. 사실, 죽은 사람이야 무엇을 알겠는가, 이후부터는 살아 있는 그 유가족들과의 인연이 남아 있을 것인데 그동안 유가족들과는 전혀 모르고 지내왔으니 유가족들과의 조문은 형식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처음부터 조문을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자손들에게 설날이면 반드시 동네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세배를 드리게 했고, 얼마간 출타했다가 돌아왔을 때도 반드시 동네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도록 했다. 그것은 평상시에도 기회 있는 대로 찾아 봬옴으로써 어르신과 그 가족들까지도 낯을 익히고 사후에도 그 도리를 이어갈 수 있게 하려는 의지가 담긴 사려 깊은 가르침이다. 요즘은 산업사회가 되면서 모두가 바쁘고 자기 일에만 몰두하다 보니 이웃 어른을 찾아뵙는 다든지, 부모님의 친지 분을 찾아뵙는다든지 하는 일이 사실상 어려운 사회 구조가 되었다.

  ‘대감 말죽은 데는 가도 대감 죽은 데는 안 간다.’ 는 이 속담 속에 담겨있는 조문의 의미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솔직한 내면을 그대로 잘 묘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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