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삼연(三緣)

문석흥 2013. 11. 29. 22:07

삼연(三緣)



   흔히 삼연을 일컬어 혈연(血緣), 지연(地緣), 학연(學錄)을 말한다. 이 삼연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운명처럼 따라 다닌다.
시조로부터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가계 혈통과 촌계를 따져 소상히 기록된 족보나 가승보가 성씨와 문중 별로 보존되어 있다. 개인 보다는 혈통과 가문을 더 중시하기에 지방(紙榜)에도 본관과 성씨만 쓸 뿐 이름은 없다. 족보에 오른 사위나 며느리도 역시 본관과 성씨만 올려 있다.
   전국 어느 곳에 흩어져 살면서도 현재 사는 곳보다는 출생지가 어디냐를 기억하고 따지게 된다. 그래서 동향인들 끼리 향우회를 조직하고 친목과 결속을 다져 나간다. 시집온 여인들은 택호라 하여 친정 향리의 마을 명을 붙여 00댁이라 부른다.
   학연 또한 옛날 신분사회 때부터 내려오던 전통으로 서원(書院)을 중심으로 한 00학파 등으로 벼슬길에 나가는데도 막강한 영향을 미쳤고 그 것이 당파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오늘 날에도 학연은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한 때 KS마크(경기고, 서울대 출신)하면 선망의 대상이고 정․관계에서도 요직에 많이 등용되었다. 지금도 각 급 학교 출신자 들 간에 어김없이 동문회가 조직되어 있고 선후배 간에 우의와 결속력을 가지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문대들이 있지만 동문회가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다. 있다면 그 대학에서 유학을 하고 나온 국내파들 간에나 있는 것 같다.
   이 삼연의 본질을 보면 동질성과 결속력과 상부상조인 것이다. 물론 그르다 할 것은 없다. 그러나 지나친 나머지 해독도 없는 바는 아니다. 특히 선거 때만 되면 이 삼연의 영향력은 대단한 것이다. 개인의 우수성과 능력은 이 인연에 얽힌 조직과 위계 서열 앞에서는 잠재되고 마는 경우가 많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우리 대표 팀이 세계 4강 대열에 올라 우리 전 국민은 물론 세계가 놀랄 정도로 신화를 불러온 데는 네덜란드 출신인 히딩크 감독의 탁월한 지도력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는 우선 우리 선수들 간에 뿌리 깊이 박힌 선후배의 인연에서 오는 위계 정신이 개인의 능력 발휘에 저해 요인임을 파악한 것이다. 그는 당장 선수 간에 선배, 후배, 형, 아우의 호칭부터 없애고 과감히 서로의 이름을 부르게 했다는 것이다. 즉 서열 파괴와 동시 개인 능력 위주의 팀 조직과 기술훈련을 시킨 것이다. 그래서 그 무렵 히딩크식 경영론이 등장하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삼연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사실은 사실이니까. 다만 지나친 동질성을 내세워 조직화 하고 어떤 목적에 이용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이런 행위들이 다 후진성에 해당하는 일임을 감안할 때 우리도 이제 선진화로 가는 길목에서 개인의 능력과 우수성이 우선시 되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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