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순서 가는순서
누구나 이 세상에 올 때는 끼어들기 없이 순서대로 질서 있게 온다. 그래서 노년, 장년, 청년, 유년의 연령별 계층이 마치 한 사슬로 이어지듯 무리 없이 순리대로 이 세상을 지켜가며 살아간다. 그런 가운데에도 이 세상을 떠나 갈 때는 대열을 이탈하여 순서 없이 가고 만다. 그래서 세상에 올 때는 선후배가 있어도 갈 때는 선후배가 없다는 말이 나온 것 같다. 즉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는 것이다.
지난 학창시절 졸업 앨범을 보면 그사이 먼저 간 친구들이 꽤 있음을 새삼 발견하면서 정말 가는 데는 순서가 없고나 함을 실감한다. 같은 또래들이 오래전부터 친목회를 만들어 날짜를 정해 놓고 월 1회씩 만나 회식을 하고 때로는 관광 여행도 하며 돈독히 지내오던 친구들도 어느새 하나 둘 떠나곤 한다. 멀쩡하게 건강한 몸으로 잘 살아 오던 사람이 사소한 질환으로 병원에 갔다가 말기 암의 선언을 받고 이내 떠나버리는 경우도 본다. 또 바로 전 날 저녁에 회식 모임을 갖고 아무 탈 없이 즐겁게 헤어졌는데 새벽에 목욕탕에 갔다가 허망하게 숨진 친구도 있다. 그 밖에도 생각지도 않게 어느 순간 사고사로 아까운 나이에 앞서 가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하면 8순, 9순이 넘도록 건강하게 장수하는 사람도 있다.
죽고 사는 것은 타고난 팔자라고도 하지만 사는 동안 몸 관리 여하에도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사람은 누구나 천수를 다 하며 건강하게 살다가 편안히 가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사항일 뿐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기에 노령기에 든 사람들은 늘 그게 고민이다.
늙어 병들어 수족 못 쓰고 자리보전하고 누워 대소변을 받아 내야 한다던가, 치매가 와서 이성 잃은 행동을 한다던가, 이렇게 되었을 때 무엇보다도 가족들에게 고통을 줄 일이 걱정인 것이다.
요즘 ‘존엄사’,‘간접안락사’에 대한 문제가 이슈화 되고 있다. 반대도 있고 찬성도 있다. 양 쪽 다 맞는 주장이다. 그러나 나는 찬성의 입장이다. 살 만큼 산 사람이 장기간 식물인간으로 병석에 누워 수액으로 영양 공급을 받고 산소 호흡기로 호흡을 하며 오직 생명만을 기약 없이 이어 간다는 것이 오히려 더 잔인스런 일이 아닌가. 유가족들과 의료진 간의 의학적인 판단으로 합의 아래 편안하게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환자를 위한 도리가 아니겠는가.
이 세상에 올 때의 순서는 있어도 갈 때의 순서는 없다고 했다. 기왕에 갈 수박에 없는 처지에서 마지막 가는 길을 존귀하고 엄숙하게 맞이하고 싶다는 자신의 의지를 왜 아무런 대책도 없이 막으려만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