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차라리 보지 말았을 것을

문석흥 2013. 11. 30. 05:34

  차라리 보지 말았을 것을


  요즘은 볼거리도, 들을 거리도 많은 세상이다. 지구촌 시대에 살면서 세계 각 국의 볼거리를 찾아 여행도 자유롭게 다닌다. 따라서 지식과 견문도 넓어져 옛날에 흔히 쓰던 촌놈이란 비하의 말도 사라지다 시피 했다. 그뿐이랴,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로 집에 앉아서도 국내는 물론 세계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사건 사고나 풍물들을 실시간으로 보고 들을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그러다 보니 봐서 즐겁고 유익한 것도 있고 차라리 보지 말았을 것을 하는 것도 있다.
  지난 4월 30일 아침, 노무현 전 대통령이 뇌물 수수 혐의로 서울 대검찰청으로 수사를 받으러 떠나는 장면을 TV를 통해서 보았다. 한마디로 첩보 영화를 방불케 하는 대 직전처럼 보였다. 사저의 앞에는 새벽부터 정장의 신사들, 주민들, 경찰들, 보도진들로 붐비고, 각종 구호가 적힌 피켓과 현수막이 등장했다. 대통령이 탄 차량이 지나갈 도로에는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을 연상케 하듯, 노란 꽃잎이 뿌려지고 길가에는 노란 풍선을 든 사람들이 도열하고 있었다. 사저가 카메라 창으로 들어 올 수 있는 곳에는 어디고 카메라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 보도진들은 진작부터 이 봉하마을에 와서 이날의 장면을 촬영하려고 진을 치다시피 하고 있었다 한다. 오죽하면 마을 사람들이 항의를 하고 노대통령 자신도 홈페이지에, ‘저의 집 안뜰을 돌려주세요.’라는 글을 올렸으랴.
  떠나는 당일도 노 전 대통령이 탄 버스와 함께 따라가는 승용차들이 김해 봉하마을에서 서울 대검찰청까지 장장 5시간 19분이나 걸려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도 땅에서 하늘에서 계속 추적하며 실시간마다 안방 TV로 그림을 송신했다.
  연일 보도되는 내용으로 보아 받은 돈의 액수가 얼마라는 것까지 전 국민이 알고 있다. 일반 시민들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면 이렇게까지 삼엄한 대작전을 펴면서까지 수사를 했겠는가? 민주국가는 민이 주인이지만 임기가 끝난 야인일지언정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역시 민보다는 극진함을 보여 준다.
  그 존엄한 대통령이 재임 중 받은 뇌물 사건으로 검찰에 수사를 받으러 가는 모습을 우리 세대에 세 번째 본다. 얼른 생각되기를, 보통 월급쟁이들이 정년을 마치고 나와 연금을 받아가며 그 수준에 맞춰 여생을 살아가는데, 대통령이면 연금도 일반 봉급자보다는 많을 것이고 또 그에 따른 혜택도 많을 것이거늘, 왜 이런 불미스런 일이 일어나는지?
  노 전 대통령은 분명 국민들에게  면목이 없다고 했다. 면목이 없다함은 무엇인가 잘못이 있어 떳떳하지 못하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이 쯤 되면 대통령을 하신 분으로,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부끄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한편 대검찰청 앞에서 친노, 반노 단체들이 서로 대결하는 모습은 더 부끄러운 일이다.
  차라리 보지 말았을 것을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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