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50년 전, 고난의 그 6월

문석흥 2013. 11. 28. 16:45

58년 전, 고난의 그 6월


    6.25 전쟁이 난지도 벌써 58주년이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중학교(당시는 6년제) 2학년, 15세이었다. 6월 25일은 일요일이라 학교에 안 가고 집에서 쉬고 있었는데 38선이 터지고 인민군이 쳐 내려온다며 어른들이 여기 저기 모여서 걱정스런 낯빛으로 전황이 어찌 전개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무심코 듣기만 했다.
   다음날 새벽 평상시대로 책가방을 들고 통근 열차편으로 학교에 갔다. 서울역에 내리니 보따리를 이고 진 하얀 옷 입은 피난민들이 눈에 띄고 분위기는 산만한 채 긴장감이 감돌았다. 학교에 가니 수업도 이뤄지지 않고 학생들 간에는 온통 전쟁이야기로 어수선 했다. 2교시 쯤 되는 시간이었을까, 갑자기 전교생 운동장으로 집합하라는 교내방송이 긴박하게 울려 나왔다.
   운동장에는 1학년에서 6학년까지의 전교생과 전교직원이 다 집합하였다. 교장선생님이 단상에 올라오셔서 인민군이 남침을 해 오고 있다는 것과 이 시간 이후 학교는 무기 휴교로 들어간다며 4,5.6학년은 잠시 남고 1.2.3학년은 학교에서 별도 통지가 있을 때까지 즉시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교실에 들어오니 개성 문산 지역 통학생들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 지역이 이미 소개령(疏開令)이 내려 이제 집에도 못 가고 가족들과는 이산가족이 된 것이다. 이렇게 긴박한 상황 속에 긴장은 되면서도 무기 휴교라는 데 대한 희열감도 없진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철없는 아이이었다.
   당시 낮 12시 대전행 완행열차를 타러 서울역에 오니 아침까지도 열차들이 정상 운행되었는데 모든 열차가 정상 운행이 되지 않았다. 대전행 완행열차는 일반 승객 피난민 들이 꽉 차고 지붕 위까지도 하얗게 올라앉은 상태였다. 나는 이틈을 도저히 비비고 탈 수가 없어 마침 아는 아저씨들과 함께 철로를 따라 100리 길을 걸어서 집에 왔다.
   이 정도나마 6.25 당시 상황을 기억할 수 있는 나이는 당시 10세 이상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현재 연령으로는 68세 이상 일 것이다. 어디서 나온 얘기인지는 몰라도 근년에 와서 6.25 북침설이 나돌았지만 6.25를 직접 체험하지 못한 세대들에게는 6.25가 남침이건 북침이건 하는 그 전쟁 이야기가 마치 신라와 백제의 전쟁 정도로 들릴 법도 할 일이다.
   행정안전부에서 6월 23일 발표한,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 앤 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13일~16일 사이 전국의 중1~고3 청소년 1016명에 대해 안보 안전 의식을 조사한 결과를 보았다. 이 조사에서 6.25가 발발한 연도가 1950년으로 정확히 답한 청소년은 42.3%였고 6.25가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사실을 알고 있는 청소년이 48.7%로 나타났다. 청소년들의 절반 이상은 6.25가 언제 난 것도, 북한의 남침이었다는 것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멸공이나 반공의 시대가 아니고 화해와 협력으로 민족의 통일을 향해 가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엄연한 역사적 사실은 확실하게 가르쳐야 하고 기억하도록 해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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