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결혼
청량한 날씨와 오곡백과 풍성한 가을은 결혼식을 올리기에도 안성맞춤의 계절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지금까지 가을에 결혼식을 많이 해오고 있다. 그러나 예전과 지금과 다른 점은 결혼식 날과 장소다. 날을 정하는데 있어 예전에는 마을의 고명하신 어르신이 역서를 보아 길일을 택해 주었으나 지금은 토요일 아니면 일요일이다. 장소도 예전에는 신부집이였는데 지금은 전문업으로 하는 예식장이다.
그렇게 된 것은 시대 상황에 따른 것이기에 어느 쪽이 났다 그르다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지금은 결혼의 계절이나 결혼일이 너무 한 데 몰리나 보니 아무 때나 여유롭게 날짜나 장소를 정하기가 쉽지 않은 점이다. 가을철에 일요일로 예식장 정하려면 적어도 1년 전부터 예식장 예약하기에 나서야 할 정도다. 그렇다 보니 비용도 예식장측이 주도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한편 결혼식 청첩장을 받는 입장은 어떤가. 가을철이면 이런 저런 인연으로 날아드는 많은 청첩장, 솔직히 고민이 아닐 수 없다. 경조사에 부조를 하는 것도 예로부터 관습으로 전 해 오는 것이기에 하루아침에 쉽게 없어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문제는 건수도 많고 액수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1990년 중반까지만 해도 보통 2만 원 정도 했는데 1990년 후반에서 2010년까지는 3만 원 정도 하다가 그 이후 지금 까지 5만 원이 유지되고 있다. 물론 이 액수는 보통으로 하는 금액이고 개인 간의 친 불친 관계에 따라 액수는 달라 질 수도 있다. 또 직장이나 단체의 경우는 자체에서 정한 경조 규정이 있어서 일반 금액보다는 좀 낮은 금액으로 회원 전원이 균일 금액으로 부담하여 단체명으로 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서울의 호텔이나 호화 예식장에서 하는 결혼식도 있다. 이런 데는 식사비만 해도 1인당 10만원이 넘는다. 이런 예식장에는 5만원 축의금 봉투 들고 가기는 좀 부끄러운 마음이다.
어쨌든 오랜 관습으로 내려오는 것이기에 어떤 형식으로든 부조는 해야 한다. 어쩌다 청첩장을 받고도 가지 못했을 경우 후일에 혼주나 당사자를 만나게 되면 죄지은 것 같은 마음이 되어 서로가 서먹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서로 간의 관계가 소원해 지기도 한다. 한편 내가 남의 청첩장을 받고 고민하는 심정을 감안하여 상대편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청첩장을 보내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 겨우 사후에 알고 그 편에서 왜 알리지 않았냐며 몹시 서운해 하는 사람도 있다. 과연 진심에서 울어난 표현일는지는 모르겠지만…
경조사의 부조는 본래 상부상조 정신에서 출발하였으리라 여겨지는데 지금은 거의 타산적으로 이뤄지는 경향이다. 내가 보냈으니 나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또 내가 5만 원을 보냈으니 나도 그만큼은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또 나에게 음으로 양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분의 혼사이니 과다한 금액으로 부조를 한다든지, 또 그런 위치를 이용해서 청첩장을 남발해서 하객이 장사진을 이룬다든지 하는 경우도 흔히 있어온 일이다. 그래서 한 때 가정의례준칙이라는 법까지 만들어 규제를 했었던 시대도 있었다. 그러나 그 준칙은 지금에 와서는 사문서가 되고 말았다. 오랜 세월 지켜 내려온 관습은 법으로 다스린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닌 것 같다.
요즘 고위층이나 재벌가에서 소리 없이 작은 결혼식으로 치르는 풍조가 생겨나고 있다. 바람직하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앞으로 계속 그렇게 확산되어 자리 잡아 감으로써 서로에게 부담을 안 주는 새로운 결혼 문화로 정착되어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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