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필

버려진 공로패(牌)와 우승배(盃)

문석흥 2013. 11. 30. 11:56


버려진 공로패(牌)와 우승배(盃)


  새벽 운동 길에서 보면 골목길 쓰레기 모아 두는 곳에 버려진 패(牌) 종류와 우승배(트로피)) 들을 본다. 버린 물건이니 이미 보존 가치는 잃은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재활용의 가치가 있어 싼 값으로 고물상에서 사주는 물건도 아니다. 그래서 폐지 수거하는 할머니들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패나 트로피는 성대한 식장에서 또는 운동장 시상대에서 축하의 박수 속에 영광스럽게 수여되어 집에 가져와 진열장이나 거실 좋은 자리에 놓여 예우를 받았을 것이다.  
  그랬던 귀하신 패(牌)와 트로피가 쓰레기 더미에 버려지다니 참 그 팔자도 기구한 운명이 아닐 수 없다. 요즘 패하나 맞추려면 봉통 10만 원 이상 주어야 한다. 트로피도 나름이겠지만 몇 만원에서 몇 십만 원을 주어야 한다. 패나 트로피는 값으로 따지기 보다는 받는 사람의 공적이나 탁월한 재능을 인정하여 오래도록 기리고자하는 그 뜻이 담겨 있는 것이기에 함부로 버려져야 할 물건이 아니다.
  그러나 매사가 다 그렇듯 가치를 상실했을 때는 헌 신짝처럼 버려질 수밖에 없다. 가치를 오래 지니려면 무엇보다도 희소성이 있어야 한다. 농작물도 풍년이 들면 풍성해서 좋기는 한데 값이 떨어진다. 요즘 젊은이들이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하늘의 별따기다. 너도 나도 대학을 나와 대학 졸업자 수가 과잉되다 보니 희소성이 떨어진 것이다. 패와 트로피의 버려짐도 같은 이치가 아니겠는가. 트로피는 대개 운동 경기에서 승자에게 주어왔으나 근래에는 예능 경연에서 우수 입상자에게도 주어지고 있다. 이에 비해 패는 대개 감사, 공로, 표창, 기념의 경우 해당자나 단체에게 증정되는데 품위도 있고 고급스러워 보인다. 그래서 웬만하면 패를 택하게 된다.
  패가 나오기 전에는 각종 상상, 감사장, 표창장, 임명장 등 종이 재질의 ‘장’(狀)이었다. 장이 세를 잡아 갈 당시는 소득 수준이 지금만 못할 시절이었기 때문이었으나 지금은 소득 수준도 높아 졌고 제작 기술도 향상되어 패를 제작하기에 용이하다 보니 장은 거의 자취를 감춰 버리고 패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흔하다 보니 패를 받는 마음도 달갑지가 않다. 패는 부피와 무게가 있기에 액자에 넣어 벽에 걸 수도 없고 어디엔가 놓아야 하는 데 많다 보면 그것도 여의치가 않다. 그래서 많은 패들 가운데 경중을 가려 몇 개만 놓고 나머지는 큰 상자에 포개 담아 두는 수밖에 없다.
  장으로 받은 것은 여러 장 겹쳐서 말아서 통에 넣거나 첩(帖)으로 해서 보관해도 편리하다. 그러나 패는  보관할 가치도 못 느끼고 그렇다고 상자에 담아 언제까지 짐 덩이처럼 허접하게 내버려 두기도 그렇고 정말 애물단지 신세일 수박에 없다. 모질게 마음먹고 불에 태워 없애려 해도 잘 타지도 않으려니와 요즘 것은 크리스털이라 매연이 대단해서 아무데서나 태울 수도 없다. 그렇다고 못 쓰는 전자제품이나 고철류, 종이류 같으면 폐품 수집하는 사람에게 넘겨주기라도 하련만, 이런 패류나 트로피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아마 다 같은 고민을 할 것이다. 물론 자손 대대로 가보로 물려 줄만 한 패라면 무엇을 고민하겠는가. 어찌 보면 결국 재활용품도 못되고 한낱 공해물질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영광스럽던 각 종 패나 우승배도 세월이 가면서 그 보존가치를 잃고 내버려야할 처지라면 길가 쓰레기 더미에 알몸으로 버려서야 되겠는가. 그래도 그 속에 담긴 영광스러웠던 뜻을 존중하여 다른 방법으로 처리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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