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필

신호등

문석흥 2013. 12. 7. 06:01

 

신호등

 

 

  거리의 신호등은 적, 록, 황 세 색깔로 그 많은 차량과 사람들의 통행을 질서 있게 다스린다. 신호등이 나오기 전에는 네거리 한 복판에 교통순경이 서서 호루라기를 불며 수신호로 교통정리를 했다. 그러나 신호등이나 교통순경이 아무리 신호를 잘 해도 차량이나 사람들이 그 신호를 지키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물론, 지키지 않을 때는 교통법규 위반으로 처벌을 할 수는 있지만, 한꺼번에 많은 차량과 사람들이 신호를 무시하고 몰아닥치면 무슨 수로 하나하나 잡아내겠는가.

  한 20년 전 중국에 갔었던 적이 있었다. 베이징이고 시안이고 큰 도시 대로에 차량, 우마차, 자전거, 사람 등이 뒤엉켜 아슬아슬하게 다니는 것을 보았다. 물론, 신호등도 작동이 되고 도로에 차선도 표시가 되어 있었다. 거리 여기저기서 교통사고가 나도 경찰관이 와서 사고 처리를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당사자들끼리 옥신각신 시비 끝에 해결하는 것 같이 보였다. 그러나 요 근래 다시 가 본 중국은 옛날의 그런 무질서한 거리 풍경이 아니고 제대로 교통질서가 유지되고 있었다.

  우리도 하기는 지금처럼 인구나 큰 도시도 많지 않고 차량 수도 적을 시절에는 교통질서 같은 것 그렇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필자 자신도 서울에 출장을 갔다가 을지로 6가에서 횡단보도를 신호 무시하고 건너 가다가 교통순경에게 적발되어 사거리 한 복판에 위반자들을 임시 가두는 펜스에 들어가야 했다. 바로 회의 시간은 임박하고 해서 순경에게 시골서 와서 잘 몰랐다고 사정을 했더니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해서 도민증을 내 보였다. 당시는 시 지역에 사는 사람은 시민증으로, 도 지역에 사는 사람은 도민증으로 신분증이 부여되었다. 결국 나는 그 도민증 때문에 푸려나는 배려를 받았다.

  지금도 횡단보도 앞에서 녹색 신호등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섰노라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신호등 아랑 곳 없이 유유자적 건너가는 모습을 본다. 구시대의 분들이기에 어느 길이든지 자유롭게 활보 하고 다니던 습관이 몸에 배어서이다. 그런가 하면 유치원생, 초등학교 1,2학년 정도의 어린이들은 녹색 신호등이 켜질 때까지 서 있다가 녹색등이 켜지면 한 쪽 팔은 높이 쳐들고 건너가는 모습을 본다. 그러나 좀 큰 중 ․ 고등학생들 중에는 더러 무단횡단 하는 학생도 있다. 그만큼 순진성이 떨어진 것이다. 또 어떤 운전자는 네거리에서 적색 정지 신호등인데도 모든 차량들이 다 정지하고 있는 데 우회전을 하는 척하고 나가서는 바로 핸들을 돌려 직진하기도 한다.

  간혹 기차시간에 임박했을 때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에 걸려 2~3분 기다릴 때는 조급한 마음에서 그냥 뛰어 건너가고 싶은 때도 있다. 그러나 주변의 이목 때문에 차마 그럴 수도 없어 애꿎은 신호등을 원망하며 서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교통질서는 후진국으로 갈수록 문란하고 선진국일수록 잘 지켜진다. 그만큼 국민들의 의식 수준의 차이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처럼 도시 생활이라는 게 편리한 점도 많지만, 사소한 제약도 많다. 그 제약이라는 게 바로 규칙이고 그 규칙은 모두의 안전과 질서를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 간혹 반칙하는 사람들이 있어 오히려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이 손해를 보기도 한다.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도 각 사람 마다 사는 모습이 다 다르지만, 어디에서 어떻게 살든 현대 사회는 공동생활을 하게 마련이다. 공동의 이익과 안전을 위해서는 교통 신호등 불 빛 따라 통행하듯, 삶의 길에도 양심이 비처 주는 신호등을 따라 반칙 없이 살아가면 오죽 좋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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