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울렛 매장
해진 데도 없고 바래지도 않아 아직은 입을만한 옷인데도 입지도 않고 그냥 옷장에 걸려 있는 옷이 늘어 간다. 그렇다고 막상 버리려니 아깝기도 하고 죄 짓는 것 같은 마음도 든다. 옛날처럼 누구에게 주려해도 혹시 언짢게 생각이나 하지 않을까 해서 함부로 남을 줄 수도 없다. 골목 어귀에 헌옷 수집 통이 있어서 그 곳에 가끔씩 넣기는 해도 그 역시 썩 내키지는 않는다.
옛날처럼 옷이 흔하지 않을 때는 한 번 옷을 사면 다 해지도록 입었지만, 지금은 해마다 철따라 각양각색의 옷이 다량 생산되어 나올뿐더러 품질도 좋아서 좀처럼 해지거나 바래지도 않아서 입는 데는 지장이 없으나 다만, 새로 나오는 옷에 밀려 유행에 뒤진 볼품없는 옷이 되어 안 입을 뿐이다. 그렇다고 신제품의 옷을 나올 때마다 사 입는다는 것도 웬만한 부자가 아니고서야 어려운 일이다.
이 시대는 옷 제조업자들이 한 종류의 옷을 생산해서 시장에 내 놓아 다 매진시킨 후에 또 새 옷을 생산하는 게 아니라 대량 생산해서 얼마만큼 정한 가격으로 팔고 나면 인 팔린 옷은 바로 창고로 보내고 새 제품을 내놓는다. 창고로 간 남은 옷은 아울렛 매장으로 내다가 40%, 50% 세일 상품으로 헐값에 판다. 아울렛 옷들이 새로 나온 옷에 밀려서, 유행에 뒤졌을 뿐이지 새 옷이나 같다. 그렇다 보니 돈이 모자라 백화점이나 브랜드 직영점에 가서 새로 나오는 옷은 비싸서 못 사 입고 새 유행에 밀려 아울렛 매장에 온 헐값의 옷을 사 입는 것이다. 그렇다고 길거리 잡표도 아닌 멀쩡한 유명회사 제품이니 굳이 마다할 이유도 없다.
나도 너무 오래된 옷을 입고 다니다 보니 좀 위축감이 드는 것 같아서 아울렛 매장에 처음 가 보았다. 웬만한 백화점 못지않게 시설규모도 크고 분위기도 좋고 진열된 의류도 유명회사 제품으로 다양했다. 물론 모두 새 옷이고 세일 판매로서 많게는 50%짜리도 있었다. 아무리 세일이지만 막상 가격을 보니 내 기준으로는 예상했던 것 보다는 싼 게 아니었다. 그러니 정품으로 나왔을 적에는 얼마나 고가였을까? 하는 감이 온다. 그만큼 나 자신이 시대감각이 둔하고 세상 흐름에 한 참 뒤처져 있음을 실감했다. 그렇다면 생산자 측에서는 처음 출시해서 고가로 팔고 이어서 이월 상품으로 헐값에 판다 해도 크게 손해 볼 것이 없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백화점에서 아울렛으로 내려 판매하다 보면 소비자들은 새 옷을 유행 따라 사 입다가 집안에 폐기 옷 창고라도 있어야 할 판이다.
그러나 어쩌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지난 날 배부르고 등 따스하면 만족했던 시대가 아니다. 기초 생활 문제는 이미 해결 됐고 멋과 품위를 유지하며 사는 시대가 되었다. 되도록 값 비싼 명품을 선호하고 또 이를 과시 한다. 그래서 눈속임 모조품 짝퉁도 등장 한다. 성인군자가 아니고서야 시대의 유행 패션에 무감각 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다만,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가 가랑이 다친다는 식으로 자기 분수를 모르고 허욕에 찬 멋과 품위만을 추구하려는 것도 문제다.
아울렛 매장에 나온 옷도 한 철이 지났거나, 팔다 남은 옷이거나, 제조 과정에서 약간의 하자가 있는 옷일망정 다 새 옷이요, 이름 있는 회사의 브랜드 제품이기에 잘 골라서 헐값에 살 수 있으니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좋은 매장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안 입는 옷을 아까워서 못 버리는 가난한 마음도 접어야 할 시대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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