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필

문석흥 2013. 11. 30. 06:06




  또 한 해를 보내고 2010 경인(庚寅)년 새해를 맞는다. 특히 금년은 60 갑년을 맞는 경인년이다. 60년 전, 경인 해에는 우리 민족 근대사에서 가장 아픔을 겪었던 북한의 남침으로 6․25전쟁이 일어났던 해이기도 하다.
  새해를 맞다 보면 노경의 무료감일 탓일까? 12장이나 겹쳐 두툼하게 달린 달력을 보면서 저 많은 달과 날들이 언제 다 가는가 하는 중압감을 느낀다. 젊은 시절엔 오히려 많이 남아 있는 날에 대한 여유로운 마음과 함께 하루하루 지나는 게 오히려 아쉬웠거늘….하기야 새해 1월 1일이나 묵은해 12월 31일이 그냥 연속인데 뭐 그리 크게 다를 게 있겠는가. 다만, 지구가 365일을 걸려 태양을 한 바퀴 돌아오는 것을 1년으로 정하고 다시 시작하는 첫날을 1월 1일이라 하고 이날을 설날이라 할 뿐이다.
  ‘설’을 국어사전에는 ‘새 해의 첫 머리’라 했고 또는 연시(年始), 정초(正初)라고도 했다. 그리고 설은 설날의 준 말이다. 설의 세시 풍속으로는 설빔을 입고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어른께 세배를 드리고 덕담을 나누며 세찬을 먹는다. 세찬으로는 떡국을 먹고 차례 상에도 밥 대신 떡국을 올린다. 설날 아침에 떡국을 먹음으로써 비로소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고 했다.
  서양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날 즉, 생일이 돌아와야 한 살을 먹는데 우리는 태어나자 바로 한 살을 먹고 설이 되면 다시 또 한 살을 먹는다. 12월 31일에 태어난 아이는 하룻밤 지나 1월 1일이 되면 두 살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새해 1월 1일은 자신의 생일과는 관계없이 전 국민이 일제히 한 살씩 먹는 특이한 나이 계산법을 가진 나라다. 그나마 조선왕조 때까지만 해도 음력을 사용해 왔는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양력을 사용하기 시작해서 사실상 설이 둘이 된 것이다. 일제 강점기 때는 물론, 해방 후 새 정부 수립 후에도 이중과세 금지 정책으로 음력설을 못 쇠게 했다. 심지어 군사 정권 시절에는 양력설은 3일간이나 연휴의 공휴일로 정했고 음력설은 공휴는커녕 모든 직장이 정상근무를 했다. 그러나 조상 대대로 지켜온 풍속을 이렇게 강제로도 완전히 무너트리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신군부가 정권을 잡은 후 비로소 음력설을 허용해서 공휴일로 정하여 오늘에 이르렀지만, 신정, 구정이라 하여 여전히 이중과세의 개념은 남아 있다. 새해 1월 1일을 맞으면 이 날부터 설 분위기가 조성되어 음력 1월 1일, 설이 지나기까지 무려 한 달 이상 내내 신년인사를 하고 연하장이 오간다.
  지금은 일상적으로 양력을 사용하지만, 음력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특히 젊은 신세대들은 음력에 대해서는 전혀 잊고 산다. 생일도 양력으로 기억하고 기념한다, 다만, 구세대들만 아직도 생일을 음력으로 쇠고 제사도 음력으로 지낸다. 어촌에서는 조수 물때를 맞히느라 음력을 사용한다. 그래도 양력은 세계 공용이고 사회 공사 모든 기관에서 다 양력을 사용하기에 이렇게 가다 보면 자연 음력은 소멸하여 갈 것이다.
  다만, 설 명절 같은 오랜 풍속으로 내려오던 것은 음력으로 지내지만, 하루아침에 강제로 고치거나 없앨 수는 없는 것,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의식이 바뀌고 새로운 문물에 동화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게 순리일 것 같다.
  해가 바뀌었으니 분명 또 한 살을 먹지만, 그래도 음력설이 아직 한 달여 남았으니 그때까지는 유보하려는 마음이니 나이를 먹는다는 게 유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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