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필

개찰구 없는 역

문석흥 2013. 11. 30. 06:12

개찰구 없는 역


  나는 동창회와 문우회 참석을 위해 한 달에 두 번은 서울에 간다. 이 밖에도 결혼 예식 참석이나 문병, 문상을 위해 비교적 서울을 자주 가는 편이다.
평택에서 서울까지는 80Km로 우리의 이 수로는 약 200리나 되는 거리다. 교통 사정이 좋지 않았던 지난 시절에는 서울에 가려면 기차나 버스를 이용했는데 양쪽 다 2시간 3~40분은 걸렸다. 기차는 급행열차가 좀 빨랐지만, 그나마 급행은 평택역에서 서는 차가 드물어서 역마다 서는 완행열차를 타야 했다. 버스는 지금처럼 고속도로도 없고 국도로 가는데, 정해진 시간은 있으나 마나 손님이 탈만큼 타야 출발을 할 정도로 운전기사 마음대로였다. 정류장마다 이런 식이니 승객으로서는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은 얼마나 편리한가. 고속버스나 기차 다 서울을 1시간이면 간다. 시간도 정해진 시간에 손님이 있건 없건 출발한다. 차내에 냉난방도 잘 되고 의자도 좌석제이고 편해서 여간 쾌적한 게 아니다. 한 편 전철까지 운행되어 10분 또는 15분 간격으로 출발하여 빠르고 시간 오래 기다리지 않아 좋다. 이젠 200리길, 멀게 느껴졌던 서울이 이웃 동네처럼 가까워 진 것이다.
  이렇게 빠른 속도감 속에 살다 보니 옛날 느리게 살았던 시절은 어느새 다 잊고 점점 더 빠른 것을 추구하게 된다. 전철도 처음에는 서울역까지 1시간 30분이 걸렸는데 지금은 1시간 45분이 걸린다. 평택과 서울역 사이에 역이 처음엔 26곳이었는데 지금은 30 곳이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수원과 영등포역만 서고 서울역으로 바로 가서 1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무궁화 열차를 자주 이용한다. 하지만, 전철은 노인 우대용 교통카드가 있어 무료승차가 가능한데 열차와 버스는 무료승차가 안 된다. 그래도 기차는 노인에게 30%가 할인 되어 요금에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기차를 이용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전에는 역에 나가 기차표를 직접 사야 했고 개찰구에서 줄을 서서 역무원에게 표를 제시해서 개찰해야 했다. 그리고 열차 안에서도 차장한테 표 검사를 받아야 했고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개찰구를 통해 나가면서 표를 역무원에게 주어야 했다. 이는 철저하게 무임승차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역에서도 전철 이외 일반 열차는 개찰구가 없어졌다. 따라서 개찰 없이 자유롭게 승강장에 나가 승차하고 자기 좌석번호 찾아 앉으면 된다. 서울역에 도착해서도 개찰구가 따로 없으니 그대로 통로 따라 역사를 나가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까지는 표를 구입하고 검표하고 무임승차를 방지하는 방법이 따로 있어서이다. 우선 표도 집에서 인터넷으로도 예매할 수 있어, 요금은 신용카드나 휴대전화로 즉석 결제하고 표는 휴대전화기로 내려받는다. 열차 내에서도 승무원은 당 열차의 모든 좌석의 각 역마다 발매현황이 입력된 전자기기를 지참하고 차내를 지나가면서 좌석 번호와 승객을 확인하면 그것이 바로 검표가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간편하고 정확하며 또 신사적인가.
  이렇게 전자 기술의 발달은 우리의 삶의 현장 곳곳의 혁명을 가져온 것이다. 사람의 손을 거쳐 하던 것을 기계가 다 한다. 그러다 보니 수동의 시대에서 자동의 시대가 된 것이다. 수동보다는 자동이 편리하고 더 간편하고 정확하다. 기계의 정확성 때문에 속임수가 없고 따라서 사회는 기계문명에 의한 신용사회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온정과 양심이 있는 신용 사회가 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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