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필

순댓국 우정

문석흥 2013. 11. 30. 07:30

 순댓국 우정
 

 

 고등학교 때 절친했던 동창 친구 셋이서 지금도 가끔 만난다. 각기 사는 곳이 다르기에 자주는 못 마나지만, 만날 때는 옛 학창 시절의 추억이 서려 있는 수원에서 만난다. 나이가 70 중반인 노인들이니 만나서 특별히 할 것이 뭐 있겠는가. 어느 조용한 집에 가서 술이나 한잔하며 두서없는 이야기나 나누며 옛 우정을 되새기는 것뿐이다. 그러나 만나서 이야기나 나눌 마땅한 집 고르기도 그리 쉽지 않다. 옛날처럼 술집이나 밥집이 많지 않았던 시절에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어 가던 집에 늘 가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연 단골집이 되었는데 요즘은 비슷비슷한 먹고 마시는 집이 너무 많다 보니 딱히 어느 집으로 마음 쏠리는 집이 없다.
  세 친구가 다 공직에 있다가 정년을 맞이하고 나온 지 10년이 넘은 백수 노인들이다 보니 처지에 맞는 집을 찾느라 만날 적마다 역 앞 식당가를 헤매곤 했다. 그런데 이번엔 옛날 기차 통학하던 시절, 기차 시간 기다리며 배고파 가끔 사먹던 역 앞 뒷골목 순댓집을 찾았다. 주인은 옛 주인이 아니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순댓집의 분위기는 변함이 없었다. 서민 냄새가 물씬 풍기는 훈훈함이 그대로 서려 있었다. 순댓국 특유의 그 비릿한 냄새와 순대, 돼지머리, 내장을 푹 삶아서 썰어 담은 머리 고기와 간, 염통, 창자, 귀, 순대 등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이 모둠 안주가 먹기도 전에 입맛을 돋운다. 고춧가루가 섞여진 소금이나 젓국에 찍어 먹는 그 맛은 내장 부위마다 맛이 다 다르다. 여기에 뚝배기에 담아 주는 뜨끈한 순대국물에 고추 다다기를 풀어서 떠 마시는 그 맛은 술 마신 씁쓸한 입안을 한결 부드럽게 해 준다. 마감으로 순댓국으로 식사하고 나면 배도 부르고 값도 싸니 뒷맛도 개운하다. 왜 이 좋은 집을 진작 생각 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안주하고 술이라도 마셔 가며 즐기며 먹지만, 학생 시절, 교복 입고 들어가 순댓국 한 그릇 먹는 것도 가슴 졸여가며 먹어야 했다. 그 당시 학생들은 보호자와 동행하지 않으면 웬만한 식당이나 극장 같은 데는 자유로운 출입이 어려웠다. 한껏 해야 빵집 정도나 갈 수 있었다. 그래도 몰래 숨어서 담배나 술을 먹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선생님들한테 적발되는 경우는 최소한 정학 처분을 받아야 할 정도로 교칙이 엄격했다.
  순댓국은 예나 지금이나 대중 음식 중의  제일 값싼 음식 중에 하나다. 어린 시절 어른들 따라 읍내 장에 가면 장 뒷전이나 쇠전거리에 임시로 친 천막 아래 아무렇게나 만든 긴 식탁 앞에 앉은뱅이 장의자에 앉아 먹던 그 순댓국 맛은 지금 먹어도 그 맛은 물리지 않는다.  요즘은 갈비요, 삼겹살이요 해서 불고기 로스 등 조리법도 다양하게 입맛을 돋우어 가며 배불리 먹는 시대가 되었으니 옛날에 없어 못 먹던 머리고가나 내장 고기, 순댓국이 눈길에서 멀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입맛도 돌고 도는 가보다. 지난날 거칠고 맛없어 먹기 싫었던 음식들이 요즘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옛날 식 손맛을 그대로 전수한다는 허름한 옛 모습의 식당에 사람들이 몰린다. 천안 ‘병천’에 가면 순대집이 즐비한데 유독 한집에만 손님이 줄을 서가며 자리 나는 차례를 기다려서 사먹는다. 싼 맛에 서민들이나 마시던 시금 텁텁한 막걸리가 요즘은 다시 그 숨겨진 진가를 인정받으며 국내는 물론 수출의 열풍까지 불고 있지 않은가.
  고향이 언제나 그리움으로 마음속에 남아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곳이 듯이, 음식에도 그 맛의 고향은 있는 가보다. 우리 세 친구는 앞으로 학생 시절에 숨죽여가며 먹던 순댓국집에서 우정을 더욱 다지며 만남을 이어 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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