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필

황혼에도 낙(樂)은 있어-發

문석흥 2013. 11. 30. 08:01

황혼에도 낙(樂)은 있어-發


  어버이날을 즈음해 마을 경로당에서 노인들을 위한 경로잔치가 있었다. 잔치라기보다는 조촐한 회식이라야 맞을 것 같았다. 이름은 경로잔치였지만, 누가 차려준 것도 아니고 마을 노인회에서 마련한 자축연이었다. 경로당에서 늘 만나는 노인들이지만, 잔치라는 이름으로 손수 음식을 만들어 차려 놓고 한자리에 모여 먹으며 즐기니 이 또한 노인들 삶의 활기를 줌이 아니겠는가.
  지난 시절, 나도 경로잔치를 베푸는데 일조 한 일이 있고 경로당도 방문하여 노인들을 뵙고 선물도 전하며 위문도 한 적이 있지만, 그때는 나도 저렇게 늙어 경로당에나 나가게 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서 아예 늙는다는 것은 생각도 하기 싫었다. 그러던 나도 이젠 경로당에 나가 경로 잔칫상 앞에 앉아 있으니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다’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인생은 60부터요, 70부터요라고 하지만, 그것은 늙음의 속도를 억지로라도 늦춰보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옛날 시조에도 ‘탄로가(嘆老歌)’가 많았지만, 오늘날에 와서도 늙음을 예찬하는 노래는 없는 것 같다. 가수 나훈아는, 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 흐르는 내 인생의 애원이란다/ 못다 한 그 사랑도 태산 같은데/ 가는 세월 막을 수는 없지 않느냐/ 청춘아 내 청춘아 어딜 갔느냐/ 라고 가버린 청춘을 애원하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던가.
  늙는다는 것은 저무는 해와 무엇이 다르랴. 저무는 해는 아름다운 노을이라도 보이지만, 사람의 늙음은 고통만이 따라올 뿐이다. 그래서 요즘 노인 4고(老人四苦)라 하여 고독고(孤獨苦), 빈곤고(貧困苦), 무위고(無爲苦), 질병고(疾病苦)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누가 연구해서 지어낸 말인지는 몰라도  수긍이 가는 것도 같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쪽만 찾다 보면 그렇기도 하겠지만, 역으로 즐거움(樂) 쪽으로 찾아봐도 네 가지는 쉽게 찾아낼 것 같다.
   첫째로 자유로움이다. 젊어서는 직장에 매어서, 가족 부양에 매어서, 돈 벌기에 매어서 사느라 언제 한 번 나만의 자유를 누려 보았는가. 이제 은퇴하고 이런 속박에서 벗어나고 보니 얼마나 편하고 즐거운가.
  둘째로 여유로움이다. 하루하루가 모두 여유롭다. 시간도 마음도 모두가 넉넉해서 무엇이든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으니 이 또한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셋째로 남들과의 경쟁이 없는 것이다. 젊어서는 공부하기 위한, 출세하기 위한, 돈 벌기 위한 생존 경쟁을 하느라 얼마나 노심초사 온힘을 다 했는가. 이제 노인이 되고 나니 이런 경쟁을 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으니 이 또한 즐거움이 아닌가.
  넷째로 예우를 받는 것이다. 전철을 무임으로 제한 없이 탈 수 있고 차내에도 노인 지정석이 있어 앉아 갈 수 있고 기차도 30% 할인을 받는다. 고궁이나 국립공원도 무료입장이다. 어디를 가도 ‘어르신’, ‘아버님’이란 존칭을 받으며 극진한 예우를 받는다. 이 또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없는 예우를 받으니 어찌 즐거움이 아니랴.
  정리하면, 노인 4락(老人四樂)으로 자유락(自由樂), 여유락(餘裕樂), 무경쟁락(無競爭樂), 예우락(禮遇樂)을 들 수 있다. 찾아보면 어찌 4락뿐이랴, 이미 노인 4고가 있으니 그에 맞춰 4락으로 집약한 것뿐이다. 노인이라고 해서 반드시 고통만 있으란 법도 없다. 나름대로 즐거움도 있으니 즐거움을 통해서 고통 일부라도 이겨가며 사는 것이 노년의 삶을 얼마든지 윤택하게 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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