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와 망종
1년 12개월을 3개월 씩 나눠 계절을 나타낸다. 즉, 3․4․5월은 봄이요, 6․7․8월은 여름이요, 9․10․11월은 가을이고. 12․1․2월은 겨울이다. 그리고 15일 간격으로 24개의 절후가 있는데 이는 매 월 4~8일 사이, 19~24일 사이에 들어 있다. 그 24절후는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도는 길(태양의 운행)인 ‘황도’를 따라 15°씩 돌때마다 기상과 동식물의 변화가 나타나 12개의 절후 명칭이 붙여진 것이다. 이 절후는 음력으로 착각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분명 양력에 해당한다.
어느 듯 금년도 6월에 접어들었으니 여름을 맞이한 것이다. 날씨로 보아서는 6월 초나 5월 하순은 별차가 없어 보인다. 지난날 전 국민의 7~80%가 농업을 주업으로 살던 시절에는 요 때가 가장 바쁜 때였다. 절후로 본다면 5월 하순 소만(小滿)에서 6월 초순 망종(芒種) 사이다. 소만부터 본격적으로 농사가 시작되어 망종에에 이른면 씨를 뿌린다. 망종의 ‘망’자는 한자로 ‘까그락 망’자이고 ‘종’자는 ‘종자 종’자이다. 즉, 망은 보리나 밀처럼 까끄라기가 있는 곡식을 말하는데 망종에 이르는 시기에 보리를 베고 그 자리에 볏모를 심는다는 뜻이다.
지난날 이 시기에 우리에게는 뼈저린 사연이 있었다. 벼농사를 지어서 가을에 거두어 겨우내 먹고 나면 봄부터 보리 수확을 할 때까지는 쌀이 떨어져 절식을 하며 굶주려야 했다.
요즘 풍요로운 시대에 사는 어린 아이들이 그 때 먹을 게 없어서 굶주렸다는 얘기를 들으면 왜 라면이나 빵이라도 사다 먹지 않았냐고 한다지만, 그랬으면 오죽 좋았으랴. 부족한 농토에 대부분 천수답이었고 농사법도 원시 농법 그대로였으니 근본적으로 쌀 생산량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다 요즘처럼 특용작물 재배나 축산의 부업으로 별도의 농가 소득도 없이 오직 벼와 보리농사에만 의존하고 살았으니 가난을 벗어 날 수가 없었다.
이때 숙명처럼 따라 붙었던 말이 ‘보릿고개’였다. 보릿고개란, 봄철에 쌀이 떨어져 굶주리며 망종에 이르러 보리 수확이 될 때까지의 겨우겨우 허기를 견뎌가며 버티는 시기인 것이다. 이런 고난 속을 힘들게 넘어오던 보릿고개가 70년대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났던 새마을 운동을 통해 사라진 것이다. 이 보릿고개 고비에는 학교에 도시락을 못 싸오는 학생도 많았고 수업료도 납기 내에 못 내는 학생이 태반이었다. 걸식아동이라는 말도 이때 나왔고 중 고등학교에 진학을 못 하거나 중도 자퇴 학생도 많았다.
불과 3~4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삶의 모습이 이랬다. 지금은 초등학교에서부터 중․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전교생 급식이 이루어지고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 시행되고 있지 않는가. 쌀이 남아돌아 해마다 수매하는 쌀이 정부 창고에 누적되는 실정이다. 보리밥도 없어 배불리 못 먹고 풀기 없는 원조 쌀, 안남미 밥도 감지덕분으로 먹던 우리가 지금은 품질 좋은 쌀을 골라서 먹는 시대가 되었다. 밥을 고붕으로 담아 먹던 그 큰 사발은 어디가고 지금은 손아귀에 드는 작은 합에 담아 먹는다. 시커멓고 껄끄럽고 찰기도 없는 꽁보리밥, 그나마 배고파 먹던 보리밥, 지금은 그 보리밥 전문식당에 손님이 붐빈다. 한동안 안 먹어 잃어 버렸던 그 한 많은 보리밥에 향수를 느껴서 일까? 나도 가끔 보리밥 집에 가서 고추장을 듬뿍 넣고 비벼서 먹으며 옛 보릿고개 시절을 생각 헤 본다.
그리고 옛 우리 선조들은 ‘손’이 없다는 청명, 한식 일에 선조의 묘소에 사초와 성묘를 하고 망종에는 제사를 지내왔다. 1956년, 6.25 전쟁 때 희생된 영령들을 추모하는 현충일을 제정할 당시 망종이 바로 6월 6일이라 이날이 현충일이 되었다는 데도 그 의미를 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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