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증
대부분의 지하철역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있어서 깊은 승강장과 출찰구를 오르내리는데 합안들이고 이용할 수 있다. 그 에스컬레이터는 계단마다 두 사람이 서서 두 줄로 탈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언제나 보면 한 줄로만 서고 한줄은 걸어서 오르내리는 줄이 되었다 이것은 그렇게 이용하도록 규정된 것도 아니련만 자연스레 그렇게 된 것이다. 어쩌다 둘이 서게 되어도 그 사이를 비집고 남보다 앞질러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도로에서도 보면 무리하게 차선을 바꿔가며 과속으로 앞질러 가는 차량을 흔히 본다. 그래봐야 신호등에 걸려 뒤따라온 차와 만나게 된다. 또 횡단보도에서도 남들은 푸른 신호등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서 있는데 아랑곳 없이 버젓이 건너가는 사람도 흔히 본다. 이런 조급증은 식당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들어가 앉자마자 주문을 서둘 뿐 아니라 빨리 가져오라고 소리친다. 그리고는 다 먹기가 무섭게 자리 털고 일어나 가기가 바쁘다.
이렇게 매사를 조급하게 서둘다 보면 앞뒤 살피지 않고 행동이 빨라지게 마려이다. 이런 모습의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자타가 인정하듯 ‘빨리빨리 문화’ 속에 익숙해져서 지금은 국민성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지 않은가 한다. 이런 조급증에서 오는 빨리빨리 하려는 습성이 어디에서 왔을까? 본래 우리에게는 느림은 있었을지언정 빠름은 없었다. 지난날 우리의 삶의 모습을 보아도 어디 한 곳에서도 급한 마음이 생길 데가 없었을 것 같다.
이는 조상 대대로 농경문화 속에 살아 왔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을 보아도 곧게 난 길도 거의 없거니와 그나마 좁고 한껏 넓어봤자 마찻길 정도였다.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동력이라고 있어봐야 고작 소(牛)이고 운반 도구래야 마차와 지게 정도였으니 빠른 것하고는 다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일상적으로 입는 옷만 보아도 남자는 통 넓은 바지저고리, 여자는 치마저고리 였으니 이런 옷을 입고 빠른 동작으로 활동하기가 사실상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렇게 살아 왔던 우리에게 6.25전쟁이 나는 바람에 젊은이들이 징집을 당해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군대문화라는 새로운 풍토속에서 빠른 동작을 안할래야 안할 수없게 되었다. 식사도 0.5초에 끝내야 하고 집합도 0.5초에 완료해야 하고 3보이상 구보를 해야 했다. 여기에 지체되면 가차없이 호된 기합을 받았으니 항상 긴장을 풀 수없고 민첩한 동작이 몸에 배어 있어야 했다.
그리고 새마을 운동 시절도 근면 자조 협동의 정신에 따라 나태한 생활 태도를 버리고 우선 부지런해야 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모두모두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살기좋은 내마을/ 우리 힘으로 가꾸세. 라는 새마을 노래가 새벽부터 마을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젔다. 조기청소를 해야 했고 모내기 벼베기 지원, 꽃길가꾸기 등의 일을 마을 주민 직장 단체 모두가 나서 협동심을 발휘하며 생활환경의 개선과 소득증대에 앞장섰다.
그 후 산업화과정에서도 빠름의 정신은 오늘날 세계서도 유례가 없는 빠른 경제성장을 하여 경제규모 10위권의 나라로 급성장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빠름의 문화 속에서 허점도 드러내어 계속되는 안전사고와 사회적 비리를 실제로 겪고 있지 않는가. 특히 요즘 차질을 빗고 있는 각 분야의 복지 문제도 멀리 앞을 보지 않고 당장의 눈앞만 보고 서두르는 신중하지 못한 정치인들의 공약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이제는 우리 모두가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라는 말처럼 조급증을 버리고 빨리빨리 문화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되지않았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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