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기도 서럽거늘
일부 국회의원들의 노인 폄하 발언이 또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며칠 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 감사 도중 설훈 위원장은 증인석에 나온 자니윤 한국관광공사 상임 감사에게, “연세가 많으면 판단력이 떨어져 쉬게 하는 것이다. 79세면 은퇴해 쉴 나이가 아니냐”라고 했다. 또 설 위원장은 “한국에서 정년은 60세 전후다, 정년이라는 제도는 왜 두었겠느냐, 판단력이 떨어져 쉬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만의 느낌이 아니고 이 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느낄 것”이라고 덧붙였다. 거기다가 물의가 일자 자신의 발언이 아무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며 79세면 쉬는 게 일반 논리고 상식이 아니냐. 맞는 말에 사과하라는 사람들이 오히려 사과를 해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다음날 라디오 방송에 나와서도 자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어찌 들으면 노인을 생각해서 해서 하는 말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국정감사의 현장이라지만, 당사자 면전에서 그런 직설적이고 모욕을 느낄 정도의 말로 표현한다는 것은 연령의 차로 보나 또 국회의원이요 위원장의 위치로 보나 결례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 발언은 비단 자니윤 감사에게만 해당됨이 아니라 600만 전체 노인들에게 던진 말로도 들린다. 지금 우리나라는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평균연령이 81.2세로 고령인구가 급속히 증가 추세에 있으며 벌써부터 100세시대를 예고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급증하는 노인인구에 비해 출산율은 감소하여 현재 합산출산율이 1.2명으로 총인구 대비 노인(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커질 수 밖에 없다. 반면 경제활동을 주로 책임지는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가파른 내리막 길을 걸어 생산가능인구 100명당 노인인구 비율인 “노인 부양비‘의 경우, 2010년 15.2명에서 2030년 38.7명, 2060년 74.5명, 2080년이면 101.1명으로 드디어 100명을 넘게 된다. 이 통계는 보건사회연구원의 ’초저출산과 향후 인동향’ 보고서에 의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생산가능인구 1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할 만큼 젊은 세대의 부담이 클 뿐아니라 막대한 사회보장 재원 때문에 국가의 재정지수도 나빠질 것임이 불 보듯 뻔 한 일이다. 이에 대책이 있다면 출산율을 높이는 수 밖에 없다. 한편 은퇴 후 남은 20~40년의 여생에 대한 생계대책도 시급한 일이다. 인생 2모작이라는 말이 나오듯, 노인들 보고 대책 없이 쉬라고 할 일이 아니라 합당한 일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
지금의 노인들이 그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가. 일제 강점기를 거쳐 8.15해방, 6.25 전쟁, 4.19 혁명, 5.16 혁명, 새마을 운동, 산업화를 거치면서 많은 시대적 변화와 혼란 속에서 희생자도 많았고 고생도 많았다. 사실상 오늘날의 풍요를 누림도 노인들의 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는 동안 노부모 봉양, 자녀교육에 모든 것을 다 바쳤고 실제 자신들의 노후 대책은 아무 것도 없다. 이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난 세대들은 지난 시대를 모른다. 지금의 60대들도 6.25전쟁을 모른다. 그래서 남침인지 북침인도 분간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다.
산업사회가 되어 가면서 우리 사회에 급속히 변해가는 것 중에 경로효친 사상의 퇴조다. 자식들이 노부모를 부양하는 모습은 점점 찾아볼 수없고 대신 노인 요양병원이나 요양 시설에 맡겨지고 있다. 그나마 길에 버려지지 않으면 다행이다. 조선시대의 시인이자 문신, 학자인 송강 정철 선생의 <훈민가>에서 나오는 시조 <늙기도 서럽거늘>이 떠오른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나는 젊었거늘 돌인들 무거우랴/늙기도 서럽거든 짐조차 지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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