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회 풍속도
해마다 연말인 12월이 되면 이런 저런 인연으로 얽혀진 크고 작은 단체, 친지, 가족의 송년 모임을 갖는다. 전에는 망년회라고 했는데 요즘에 와서는 송년회로 많이 불린다. 망년회의 ‘망’자는 한자로 忘(잊을 망)자를 쓴다. 즉 지나온 한 해를 잊어버리자는 뜻으로 여겨지는데 지나온 한 해에 얼마나 많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있었기에, 라는 생각이 든다. 하긴 우리나라가 지난 시절에는 가난 속에 살았기에 그랬을 법도 하다. 그러나 송년회의 ‘송’자는 한자로 送(보낼 송)자를 쓴다. 지나온 한 해를 되돌아보며 무사히 잘 보냈다는 감사의 뜻으로 아주 잊어버린다는 것 보다는 한결 부드럽고 편안함을 준다. 그만큼 우리의 삶이 여유 있고 안정되었다는 뜻이 아닌가.
1년을 12개월로 쪼개서 세월의 한 단위로 하여 살아가다 보니 그 1년은 바로 각자 인생의 연륜이요 나이가 되어 한해 한해 갈수록 싸여가게 되니 앞으로 살아갈 세상의 범위가 점점 축소되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12월이 되면, 어느새 한 해가 다 갔나, 세월이 참 빠르구나 하는 속도감을 새삼 느끼며 아쉬움과 함께 허전함을 느끼게 된다. 송년회라는 이름으로의 모임도 가는 세월의 아쉬움과 허전한 마음도 메우며 살기에 바빠 느슨해 졌던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 정을 새롭게 다져보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송년회는 모임의 장소도 평소와는 달리 등급을 높여 잡고 넉넉한 차림으로 먹고 마시며 웅크렸던 마음을 풀며 경우에 따라서는 2차 3차로 연장되기도 한다. 이러는 과정에서 평소에 잘 들어내지 않았던 개성들이 들어나기도 한다. 남들보다 좀 여러모로 자신이 우월하다고 느껴 자랑을 늘어놓으며 폼 잡는 과시형, 남의 말꼬리를 잡고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결과적으로 싸움까지 벌이는 공격형, 무엇을 그리 많이 아는지 다른 사람 말 할 사이 없이 혼자만 뒤떠드는 수다형, 뒤늦게 마지못해 와서 이런 저런 구실을 늘어놓는 변명형, 먹을 것만 먹고 언제 갔는지도 모르게 사라지는 잠적형, 술이 취해 추태를 부리는 주정형 등 이런 사람들의 이런 행태는 분위기를 흐려 놓기 일쑤다.
보통 그렇듯이 이런 단순 친목 모임 성격의 형태는 사전에 모임 성격에 걸맞은 프로그램이 없다. 날짜와 시간 장소만 통보 받고 참석하여 어느 정도 올 사람들이 온 것 같으면 먼저 건배로부터 시작하여 술잔이 돌아가고 취기가 돌기 시작하면서 제 흥에 겨워 왁자지껄 떠들며 시간을 흘려보낸다. 이러는 가운데 공격형, 수다형, 주정형 들이 주로 주인공이 되어 모처럼의 만남의 좋은 분위기를 씁쓸하게 하기도 한다. 게다가 2차 3차로까지 이어지다 보면 이성을 잃고 망가진 몸이 되어 자고 나면 숙취의 고통과 전날의 행적에 대해 기억이 없으니 무슨 일이나 저지르지 않았는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연말에는 이런 송년회 모임의 후유증으로 취객들의 소란, 싸움, 음주운전 사고, 지구대에서의 난동 등 송년회 증후군이라 할까? 각 종 사고로 얼룩진 연말의 풍경을 연출 한다. 평소에는 별 탈 없이 잘 보내다가 연말 송년회 때만 되면 왜 이래야만 되는지? 대체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에 취해 한 행동에 대해서는 술이 그랬지 사람이 그런 게 아니라는 생각으로 관대한 편이다. 그러나 경찰 당국에서는 나쁜 버릇을 가진 주객들의 행태에 대해서는 엄격한 처벌이 있어주었으면 한다.
술로 망가지는 망신회(亡身會)가 아닌 한해를 같이 했던 사람, 다정했던 사람들과 만나 너그러운 마음으로 즐기며 보내는 건전한 송년회(送年會)가 되기를 바라는 마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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