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명
가끔 가는 동네 이비인후과 병원에 간호사 둘이 있는데 이 두 간호사는 내가 정년퇴임하기 이전에 근무했던 여자고등학교 제자들로서 둘은 선후배 사이다. 사제 간이기에 갈 적마다 남달리 반갑고 친근감을 느꼈다. 그들 또한 은사인 나에게 각별한 친절과 무엇인가 더 다른 환자들보다 배려하려는 태도가 엿보였다.
그런데 한 번은 갔더니 진료를 받고 나왔는데도 대기하고 있는 환자도 없고 해서 한가롭기에 사사로운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이 제자들이 졸업한 지가 오래되었고 해서 얼굴 기억만 있었지 이름이나 몇 년도 졸업을 했는지 몇 회 졸업생인지를 모르고 있었기에 좀 미안한 감은 들었지만, 비로소 물어 봤다. 그런데 이들 또한 졸업한지가 오래 되어서인지 졸업 횟수는 기억 하면서 졸업 년도는 확실하게 기억을 못했다. 그래도 이름이라도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었다. 내친김에 나는 이들에게
“자네들은 내 이름을 기억하나?” 하고 물었다.
“그럼 몰라요? 문석흥 교감 선생님을”,
그러고 보니 내가 교감시절에 이들이 다녔음을 알게 되었다.
이쯤 되니 30여 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 되어 그 시절의 이런 저런 추억담이 자연스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 때 선배 간호사 제사가 하는 말,
“선생님 별명이 뭔지 아세요?”라고 한다.
“나한테도 별명이 있었나? 뭔데?”
‘이사도라’ 라며 두 제자 간호사들이 입을 손으로 막으며 웃어 댄다. 나도 금시초문이었다.
“이사도라가 무슨 뜻이야?”
이들이 해설하는 이 별명의 뜻은, 24시간 돌아다닌다는 뜻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교감은 자주 수업시간이면 복도를 순회하며 각 교실에서 수업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수업 이탈학생이나 없는지, 등을 살피며 감독하는 일도 했었다. 그러니 학생들이나 선생님들이 부담을 느꼈을 것이며 밉게도 보였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교감은 온 종일 교내를 돌아다니며 감시 감독하는 사람으로 비칠 수밖에…, 결코 애교 있고 재밋는 별명은 아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후배 제자 간호사는,
“선생님 중학교 교감선생님으로 계실 때 별명은 ‘스머프 파파’였어요.”라고 한다.
‘스머프’는 당시 초중학생들이 즐겨 보았던, 미국에서 제작한 ‘스머프’라는 TV용 만화 영화였다. ‘스머프 파파’는 이 만화영화에서 여러 아이들을 친절히 돌보며 이끄는 마음 좋은 할아버지 리더를 말한다. 이 별명 또한 나는 잘 기억이 안 나는 별명이다. 그러나 ‘이사도라’보다는 한결 정겹고 부드러운 감이 드는 별명 같다. 또 하나 내가 알고 있었던 별명으로는 ‘친구오빠’라는 게 있었다. 이 별명은 내가 고등학교 교장으로 있을 때 내 차의 뒷자리 번호가 7958이었는데 같은 학교에 다니던 우리 아이 친구들이 차번호의 발음을 묘하게 변질시켜 칠구오팔을 “친구오빠‘로 만든 것이다. 이정도의 별명은 그다지 악명으로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이처럼 별명은 대개 학교 선생님들이 재직 중에 학생들로부터 얻게 된다. 그 선생님의 외모나 성격과 습관의 특징을 잡아서 그에 맞는 말을 지어 내는 것이다. 그래서 별명의 유형도 가지가지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자기들끼리만 아는 선생님들의 별명을 흥미 거리로 자기들 세계에서만 부르며 재학 중에는 물론 졸업 후에도 옛 은사님들의 별명을 기억하며 학창 시절의 추억으로 삼기도 한다. 지금도 가끔 제자들의 동창들 모임에 초청되어 회식 자리에 참석할 때가가 있다. 먹고 마시며 분위기가 고조 되면 지난 학창 시절의 추억담을 늘어놓으며 선생님 별명을 부르며 한바탕 웃어 댄다. 재학 중에는 감히 선생님 앞에서 별명을 부르지 못했지만 졸업 후 성인되어 어찌 보면 같이 늙어 가는 터에 뭐 어려운 게 있으랴. 학창 시절의 추억과 사제 간의 정을 되새기려는 표현이 아니겠나. 나 또한 껄 껄 웃으며 이 분위기 함께 젖어 드는 것이다.
요즘도 가끔 옛 제자가 있는 동네 병원 가면 접수대에 나란히 앉아 있는 두 간호사 제자에게 내가 먼저 “이사도라 선생님 왔어!” 하며 한마디 건네면 이들도 일어서서 반가이 맞으며 다시금 옛 학창 시절로 돌아 간 느낌을 갖는다.
좋은수필 2020. 2월 (1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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