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필

할아버지 자리에 앉으세요

문석흥 2020. 8. 20. 07:32

할아버지 자리에 앉으세요!

 

 

   걸어 가다가 비가 조금씩 내리기에 시내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는 승객이 얼마 안 타서 좌석이 많이 비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바로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야겠기에 자리에 앉지 않고 교통카드를 찍고 손잡이를 잡은 채 출입문 앞에 서 있었다. 그런데 운전기사는 백미러로 내 모습을 보았는지, “할아버지! 자리에 앉으세요!”라고 나무라듯 큰 소리로 알려 왔다. 운전기사는 승객의 안전을 위하여 특히 나 같은 노인에게는 더 신경을 써서 각별한 당부를 하는 것으로 이해는 했다. 그러자 바로 버스는 정류장에 정차를 해서 나는 목적지에 왔기에 내렸다.

   그런데 운전기사가 나에게 던진 말 중에 할아버지라고 서슴없이 부른 것이 내내 불쾌감으로 차올랐다. 요즘은 웬만하면 다 어르신이라고 하는데 할아버지라니, 할아버지는 집안에서 손자들이 부르는 호칭일 뿐, 밖에서는 언제부터인지 할아버지는 비하하는 말로 들린다. 나 자신은 아직 아픈데 없고 내 발로 가고 싶은 데 불편 없이 잘 다니고 있으니 노화된 나의 모습을 나 스스로가 못 느끼며 마음은 아직도 지나온 세월 속에 살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하긴 요즘 떠도는 말로 뛴다고 생각하는 데 걷고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 남 보기에는 영락없는 노인이요 할아버지로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요즘 아무리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마음은 젊음에 머물러 있을지 몰라도 외모가 늙는 다는 것은 피할 길은 없는 것 같다. 나는 요즘 머리가 완전 백발이 되었다. 게다가 앞머리는 정수리까지 거의 다 빠지고 헤일 정도로 몇 가닥 남아 힘없이 날리고 있다. 젊어서 유난히 머리 숯이 많고 굵고 뻣뻣해서 그냥 빗으로 빗어서는 도저히 뒤로 넘어가지 않아 이발소에서 불에 달군 고대로 지져 포마드 발라서 강제로 넘겨야 했다. 그런데다 머리가 이마에 절반 가까이서부터 나서 족집게로 한 가닥 한 가닥 따가움을 무릅쓰고 뽑아내야 했다. 당시는 남자는 이마가 넓어야 남자답다고 했고 이마가 좁으면 소갈머리가 없는 졸장부라고 했기에 이마가 넓은 남자가 롤 모델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앞머리는 눈썹까지 앞으로 끌어내려 이마는 머리카락에 덥혀 보이지도 않는다. 이제는 젊은이들의 얼굴에서 이마는 찾아 볼 수가 없다. 내가 이 시절에 젊은 이었다면 뻣뻣하고 숯이 많았던 내 머리 억지로 뽑아내고 불고대로 지져 넘기느라 애쓰지도 안았을 것 아닌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유행도, 사람들의 생각도 변하는 게 자연의 순리인가보다.

   어디 머리뿐이랴, 시력도, 청력도, 치아도, 관절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노화가 진척되어 어느 날 갑자기 그 기능이 약화되었음을 느낀다. 그래서 병원에 가면 노화 때문이라며 적당히 치료하고는 완치는 어렵다며 무리하지 말고 가벼운 운동을 하며 잘 관리하라고 한다. 기계로 따지면 이제 유효기간이 다 되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래도 요즘에 와서는 약화된 기능을 다소나마 보강해 주는 대체 기구나 약품, 치료 기술이 발달하여 조기에 치료를 받으면 그래도 심한 불편 없이 생활할 수는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지만 심혈관 질환이나, 치매 등 이런 심각한 질환에 걸릴까봐 두렵다.

조선왕조 정조 시대 학자였던 심노숭(沈魯崇)은 노인이 되면 다섯 가지 형벌, 오형(五刑)을 받는다고 했다.

첫째, 보이는 것이 뚜렷하지 않아 책을 읽을 수 없으니 목형(目刑)이요

둘째, 단단한 것을 씹을 수 없어 잇몸으로 호물호물하니 치형(齒刑)이요

셋째, 다리에 힘이 없어 걸을 수 없어 집에서만 있으니 각형(却刑)이요

넷째, 들어도 정확치 않아 딴소리를 하게 되니 이형(耳刑)이요

다섯째, 여색을 보아도 아무 요동이 없으니 궁형(宮刑)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역시 정조 시대 승지 여선덕(呂善德)은 다섯 가지 즐거움, 오락(五樂)으로 반론을 폈다.

첫째, 보이는 것이 뚜렷치 않으니 전신 수양을 할 수 있고

둘째, 단단한 것을 씹을 수 없으니 연한 것을 씹어 위를 편안히 할 수 있고

셋째, 다리에 힘이 없으니 편안히 앉아 힘을 아낄 수 있고

넷째, 나쁜 소리 들리지 않으니 마음이 저절로 고요해 지고

다섯째, 여색으로 망신당할 행동에서 멀어지니 목숨을 오래 이어 갈 수 있으니 이 것이 다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라고 했다.

   원효 대사가 당나라에 유학을 가다가 날이 저물어 동굴 속에서 자는 중에 목이 말라 머리맡에 있는 바가지에 담겨있는 물을 마셨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간밤에 마신 물이 해골 바가지 속에 담긴 썩은 물이었음을 알고 깨달음이 있어 유학을 포기하고 되돌아 왔다 한다. 그 깨달음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

늙는다는 것도,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 것도 다 마음먹게 따라 생각하기 나름이 아니겠는가.

                                                                                              계간수필 2021.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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