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필

첫 손자를 보면서

문석흥 2018. 8. 16. 09:48

첫 손자를 보면서

 

 

   늦둥이 아들을, 그것도 외동아들을 낳고 온 세상 혼자 만난 것처럼 기뻐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 아들이 무탈하게 커서 서른 세 살 되어 결혼을 할 때 또 한 번 행복감에 젖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손자가 태어났으니 이 때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또 다른 기쁨과 행복감 속에 젖어들었다. 내 나이 이미 산수(傘壽)를 지났거늘 그래서 그 손자가 더 귀엽고 금쪽같은 소중함이 아니겠는가. 지금까지는 아버지로 살아오다가 이제부터는 할아버지가 되었으니 새로운 내 인생을 사는 느낌이다.

   이 손자 녀석이 백일이 되다 보니 사람을 쳐다보고 웃기도 하고 무어라고 소리도 내며 불만스럽거나 배가 고프면 있는 대로 소리 내어 울기도 한다. 깨어 있을 때에는 눕혀 놓아도 안고 있어도 팔다리를 계속해서 움직이며 제 나름대로 운동을 한다. 볼도 팔다리도 통통하고 눈도 또렷하게 뜨며 주변에 움직이는 것들을 따라 주시한다. 이렇듯 갓 났을 때보다는 제법 아기 티가 나서 너무 예쁘고 귀여운 모습이다. 웃을 땐 웃을 때대로 울 땐 울 때대로 그저 귀엽기만 한 것이다. 이 녀석이 돌이 가까워지면서 제가 혼자 자력으로 뒤집기도 하며 하루하루 지나면서 군인들 포복하듯 배로 밀치며 앞으로 나가기도하더니 어느 샌가 일어서 비틀거리며 한 발작씩 떼기도 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돌이 지나면서는 양팔을 들고 중심을 잡아가며 비틀거리면서도 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저만이 아는 발음으로 무언가 의사표시도 하려하고 달려와서 안기기도 한다.

   이 손주 녀석의 하나하나의 행동을 보면서 그 귀엽고 대견스런 모습에 흠뻑 빠져 시간가는 줄을 모른다. 현재는 따로 살지만 일요일이고 공휴일이거나 집안 행사가 있을 때 오면 그 사이 더 또렷해 진 얼굴 모습이며 활발해진 행동에 또 다른 느낌을 받는다. 거실이고 침실이고 주방이고 뛰어다니며 손이 닿는 데 있는 물건들은 모두 잡아당겨 쓰러트리고 열리는 싱크대 문이며 서랍문 등 무두 열어 손닿는 대로 끄집어낸다. 일일 쫓아다니며 위험성이 있는 것은 치우기도 하고 떼어 말기기도 하지만 어느 샌가 또 달려가 여전히 저 하고 싶은 데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 모습이 왜 그리 밉지 않고 귀엽기만 한지

   그렇지만 따로 떨어져 살면서 가끔씩 보아서 낯이 설어서인지 처음 할머니 할아버지를 볼 때는 울음을 터트리며 제 아비 어미에게 가서 안기곤 한다. 그러다가도 좀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고 달려들고 안기고 하는 모습이 너무도 정겹고 귀엽다. 이것이 핏줄의 그 오묘한 정이 아닌가 한다. 요즘엔 벌써 한 15개월이 지나다 보니 간난쟁이 티가 많이 벗겨지고 어쩌다 보아도 전처럼 낯설어 울고 외면하려들지도 않는다. 그러나 아직은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개념은 있어 보이는 것 같지는 않으나 같이 놀아 주어도 거부하지 않고 잘 따르곤 한다. 집안에서도, 어디를 데리고 나갔을 때도 좀처럼 걷는 법이 없고 정신없이 이리 저리 마구 뛰어서 일일이 따라다니며 위험성 있는 데는 붙잡아야 한다.

   자주는 아니지만 이렇게 손주 녀석과 하루를 보내는 날은 한없는 행복감에 젖어든다. 제 아비가 어렸을 적에는 그 때만해도 출근하고 저녁 늦게 돌아오다 보니 자주 놀아 주지도 못했을 뿐더러 지금 손주 녀석 대하는 느낌을 갖지 못했던 것 같다. 흔히들 손주를 보았을 때가 더 살뜰한 정을 느끼고 한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움 마음이 넘쳐난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나 역시 집안에 장증손자로 태어나서 아버지나 엄마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를 제치고 증조할아버지 할머니 품에서 한껏 사랑을 독차지하며 컸던 기억을 되새겨 본다. 지금은 옛날 대가족 시대처럼 몇 대가 함께 살 수 없는 사회 구조가 되어 귀여운 손주와 늘 마주 보며 살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이다. 그래도 며느리가 스마트 폰으로 자주 보내 주는 손주 녀석의 동영상 사진을 반갑게 받아 보면서 늙어가는 우리 두 늙은이의 얼굴에 웃음과 행복감을 불러다 준다. 어서 날이 가서 손주 녀석 손잡고 다니며 장난감도 사주고 맛있는 과자도 사 줄 날이 오기를 고대하며 심심하면 스마트폰을 켜고 그 귀여운 모습을 보고 또 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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