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뭘 먹고 살라고요
문 석 흥
msh5@hanmail.net
운동 나갈 때 입을 재킷이나 조끼를 하나 사고자 국내 어느 브랜드의 아웃도어 매장을 들렸다. 오래간만에 들린 매장 안에는 진열된 각 종 아웃도어 제품들이 전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선 디자인에서 화려한 여러 가지 원색의 색상과 변화 있는 구성으로 제조되었음이, 단조로웠던 이전 제품들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제품의 원단도 가볍고 부드러우면서도 여러 가지 기능성을 지니고 있었다.
나 자신 나이도 늘어가고 해서 근년에 와서는 등산은 피하고 주로 걷기 운동을 하는 관계로 지난 날 등산을 할 때의 갖추었던 각종 등산의류들은 현재는 사장된 상태인데 막상 착용하려해도 이제는 너무 구닥다리가 되어서 좀처럼 입고 나설 용기가 생기질 않는다. 매장에 올 때는 새 것으로 하나 사고 싶었으나 우선 값이 비쌌고 또 재킷이나 조끼의 색상이 여러 가지 원색으로 혼란스럽게 구성된 점이 내 취향에 맞지가 않았다. 무채색의 단조로운 디자인의 옷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이런 혼란스럽고 화려한 패션에 선 듯 호감이 가질 않았다.
주인에게 물었다. “이런 것 밖에 없어요?”, 주인은 내가 구형 스타일임을 알아차렸는지, “어르신, 이것도 지금 사셔야지 2~3년이면 없어지고 또 새로운 제품이 나옵니다. “나는 다시 물었다.”한 번 나오면 좀 오래 가야 하잖아요?” 라고 했더니 주인은 빙그레 웃으면서 농담 반, 진담 반 ”그럼 우린 뭘 먹고 살라고요.” 라고 했다.
지금은 온 사회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시대가 되었기에 새 것이 헌 것이 되는 기간이 너무도 빨라졌다. 비단 아웃도어 의류 뿐 아니라 신사복 정장도 작년 형이 다르고 올 형이 다르다. 깃이 넓고 기장도 긴 재킷에 가랑이도 넓고 기장도 긴 바지가가 유행인가 했는데 어느 사이 그 반대로 깃도 좁고 기장도 짧고 몸에 착 달라붙는 재킷에, 가랑이도 좁고 기장도 짧아진 바지의 정장이 나왔다. 사람의 시각이 간사스러워서인가 별난 모양의 옷이라도 새로 유행이 되어 남들이 다 입고 다니면 그 유행에 바로 익숙해 져서 그 전에 유행되어 멋있다고 입고 다니던 옷이 오히려 이상스럽고 촌스럽게 보여 입지 않게 된다. 그래서 옷장 안에는 전에 아껴가며 입던 옷들이 총총히 걸려 있다. 누가 가져다 입겠다고 하면 선뜻 내 주고 싶지만, 그런 사람도 없고 자청해서 주려고 해도 행여 그 사람을 모독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그렇게도 못하고 그냥 애물단지로 옷장 안만 비좁게 채우고 있다.
지난 날 어렵게 살던 시절, 어디 체면을 차려야 할 자리에 갈 적에는 입고 갈 반반한 양복이 없어 친구의 새 양복을 빌려 입고 가기도 했다. 또 세탁소에 가면 세탁 해 놓은 양복 중에 바로 안 찾아가는 양복을 세탁소 주인이 약간의 사용료를 받고 잠시 빌려 주기도 했다. 그 때 양복에 대한 소중한 추억이 있어서인지 지금 옷장을 채우고 있는 안 입는 양복들을 버리고 싶어도 쉽게 버려지지가 않는다. 6.25 동란 직후 전쟁의 폐허 속에 외국에서 보내오는 구호의류를 감지 덕으로 얻어 입고 미군 작업복을 염색해 입던 시절이 있었건만,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비단 의류뿐만 아니라 가전제품, 가구, 주방용품 등에서도 같은 현상이다. 가전제품도 사용하다 보면 고장이 났을 때 사소한 부품하나만 갈아 끼우면 되는 데 그 제품이 이미 생산이 단절되어 새 모델의 제품이 나와서 부품을 구할 수가 없어 못쓰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가구 또한 이사 할 적마다 새 제품으로 바꿀 수밖에 없게 된다. 집에 화장실 바닥 타일이 몇 개 깨져서 보수를 하려 해도 똑 같은 타일이 이미 단절되어 하는 수 없이 전체를 뜯어내고 새로 공사를 해야 한다.
이것이 현대 발달된 산업 사회의 생산과 소비 구조인 바, 시대 조류에 따라 살아 갈 수밖에 없겠지만, 넉넉지 못한 주머니 사정으로는 벅찰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멀리 외곽 어디엔가 있는 싸구려 이월 제품 매장이나 고물상을 찾게 된다. 이런 현상이 우리나라는 좀 심한 게 아닌가 한다. 내 집에 오래 사용하고 있는 독일제 압력 밥솥이 있는데 오래 사용해서 뚜껑 속 테두리 고무배킹이 낡아 증기가 새어 밥이 되지를 않을 때가 있다. 그러나 백화점에 그 제품 코너에 가면 그 오래된 밥솥인데도 그 회사 제품의 고무배킹이 있어서 사다가 교체 해가며 아직도 쓰고 있다.
우리나라는 너무 소비자의 구매 충동만을 자극하는 게 아닌가 한다. 기존의 제품도 어느 정도 생산해 가면서 신형 제품도 생산해서 구매자들의 취향 따라 능력 따라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필요한 제품을 구할 수 있는 생산 구조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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