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필

사제 간의 인연

문석흥 2023. 5. 24. 10:18

사제 간의 인연

 

 

문석흥

msh5@hanmail.net

 

 

   친구 넷이서 승용차 편으로 당일 관광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오는데 고속도로 진입하는 도로에서 순찰 경찰로부터 음주 측정을 받았다. 다행히 운전하던 친구는 물론 차내 다른 사람도 음주한 사람이 없었기에 적발되지 않았다. 아무 과오도 없지만, 왠지 경찰관으로부터 검문을 받게 되면 우선은 긴장감이 든다.

  여러 해 전, 설악산을 다녀오면서 고속도로가 너무 차량 정체 되어 강원도 어느 한가한 지방도로 나와 운전한 적이 있었다. 오가는 차량도 별로 없고 교차로나 신호등도 없고 해서 나도 모르게 과속으로 달렸던 것 같다. 그러던 중에 길가에 주차해 있던 교통 순찰차에서 교통순경이 나와 차를 정지시켰다. 썬글래스를 착용한 정복 차림의 늠름하게 생긴 교통순경이 운전석 옆으로 다가 섰다. 나는 운전석 옆 창문을 내렸다. 순경은 나에게 거수경례를 하고,

과속하셨습니다. 면허증 좀 주십시오.”

  나는 과속한 것은 인정하는데 주행 중인 내 차를 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과속한 것을 아는가? 의심이 갔다. 그 당시만 해도 간혹 트집을 잡아 돈을 받아내는 경우가 있었기에 나도 마음속으로 대비를 하며 일단 면허증을 제시 했다. 그런데 이 교통순경이 나의 면허증 보더니 썬글래스를 벗으며 놀란 표정으로,

문 선생님 아니세요? 저 제자 ㅇㅇㅇ입니다.”

  순간 나도 마음을 다듬고 썬글래스를 벗고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중3때 담임을 했던 유난히 키가 컸던 제자였다. 뜻밖에 이렇게 만난 자리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선 손을 내밀어 제자의 손을 잡았다.

이 사람! 여기서 이렇게 만나다니 반갑네!, 그런데 내가 속도위반을 했으니 부끄럽네.”

제자 순경은 과속 처리를 하지 않고 면허증을 돌려주며,

선생님! 과속하시지 말고 조심해서 잘 가십시오,

제가 고향에 가는 기회 있으면 선생님 꼭 찾아뵙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그리고 다시 자세를 바로하고 나에게 정중하게 거수경례를 했다. 뜻밖에 이 제자 교통순경의 관대한 처사에,

고맙네! 고향에 오면 꼭 들르게.”

  나는 이 말 한 마디 남기고, 운전석에 앉은 채 제자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출발을 했다. 내가 과속으로 적발 된 것은 알고 보니 멀리서 오는 차량의 속도를 손으로 들고 측정하는 <스피드건(speed gun)>이라는 장치를 사용한 것이다. 돌아오는 차중에서 여러 가지 상념에 젖어들었다. 우선 그 제자 교통순경이 아니었다면 꼼작 없이 속도위반으로 그에 해당하는 형을 받아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사제 간이라는 그 인연이 경직된 법규를 초월할 정도로 깊은 정으로 맺어져 있는 것인가를 새삼 느끼게 했다. 지금도 교통사고 현장에서 사고 처리를 하는 교통순경을 보면 지난 날 그 제자 교통순경의 모습이 떠오른다.

  요즘에 가끔 친구들 몇이 모여 식당에서 회식을 하다 보면 다른 좌석에 식사하고 나가면서 나에게 다가와,

선생님! 제가 이 자리 계산했습니다. 즐겁게 드시고 가십시오.”

얼굴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이렇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가는 제자도 있다. 순간 어리둥절한 내 마음은 한없이 고맙고 같이 있던 친구들에게도 자랑스럽고 흐믓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친구들도 사제 간에 이 정겨운 모습에 부러워하는 표정이었다.

가끔 관공서에 민원서류 발급을 받으러 가면 한 민원업무 공무원이 업무에 바쁜 중에서도 어느 샌가 날 알아보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선생님!”

하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리고는 즉석에서 내가 원하는 민원서류를 해다 준다. 또 길을 걷다 보면 생각지도 않게 택시가 내 앞에 와서 정차하며 기사가 문을 열고 나와,

선생님! 어디가세요.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타세요.”

   택시기사가 된 제자 덕에 본의 아니게 무임으로 승차를 한 적도 있다. 이럴 때 느끼는 그 흐믓한 마음과 정, 그 고마움, 무어라 형언할 길이 없다. 스승에 대한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그 제자의 마음, 세월이 가도 변함없는 사제 간의 인연이 바로 이런 것인가를 새삼 느끼게 한다.                        『수필과 비평』 23.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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