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출산 시대
문 석 흥
지금 우리에게는 생각지도 못 했던 저 출산 시대가 왔다. 출산은 인구와 직결 되어 있는 문제이기에 시대 시대에 따라서 국책으로 출산 장려와 출산 제한 등의 인구 조절 정책을 펴 왔다. 지난 시절 한 때 우리나라도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시절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산아제한 정책을 편 적이 있었다. 이 때 구호로 “아들 딸 구별 말고 둘 만 낳아 잘 키우자.”가 있었다. 이 시절 이 운동을 펼치기 위해 전문 요원들이 마을마다 찾아다니며 가임 여성들에게 적극 홍보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한 편 남자들은 예비 훈련장에서도 무료로 정관 수술도 한 적이 있었다.
이런 운동을 적극 펴서인지 인구 조절의 효과도 있었다. 사실 우리나라 산업화되기 이전 농경사회 시절에는 전체 인구의 70%이상이 농업에 종사 할 정도로 농업이 주 산업이었다. 당시의 농업은 오늘 날처럼 기계화된 농법이 아니고 소와 사람의 힘을 이용한 원시 농법이었다. 그래서 그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 농가에서는 다출산을, 그것도 되도록 아들의 출산을 원했었다. 그 시절 출산 장려를 위해 다출산 산모에게는 포상을 하기도 했었다.
또 6.25전란 때 전쟁터에 나갈 젊은이들이 절실히 요구 되어 정상적으로 징집도 했지만, 그래도 부족해서 낮에 거리에서 젊은이들을 임의로 체포하듯 잡아가기도 했다. 그 정도로 전선에서 전사자도 늘어나고 따라서 병력도 충당해야 할 절박한 시대였다. 그러다 보니 군에 가야할 아들이 있는 집에서는 영장 받고 군에 가기 전에 조기 혼인을 시켜 첫 날 밤을 치르게 하기도 했다. 그것은 바로 아들이 전선에 나가 전사할 것을 대비하여 미리 씨를 받아 두겠다는 절박한 소망이었던 것이다. 전쟁이 휴전으로 멈춘 후에도 역시 전쟁에서 소모된 인구 보충을 위해 다출산을 장려했다. 그래서 1955년~1963년에 태어난 세대를 베이비붐세대라 했다.
그리고 이보다 5년 앞선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을 하고 우리나라는 36년 간 일제 억울한 식민시절에서 해방을 맞이했을 때도 그동안 일제에 의해 일본군이나 징용으로 강제로 끌려갔던 사람들이 살아 돌아 왔을 때도 인구 증가를 위해 다출산 시대가 열렸었다. 그 결과 지금도 1945년 전 후한 출생자를 해방둥이, 6.25 전란 시 출생자를 6.25동이라 부르지 않는가. 이처럼 다출산 시절이 있었는가 하면 지금에 와서는 저 출산 시대를 맞게 되었으니 참 아이러니 한 일이다.
oecd가 집계한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자녀수의평균) 가상확신자료(2022년)에 보면 우리나라 출산율이 전체조사국중 0.78명으로 이웃나라 일본 1.29명, 중국 1.6명보다도 낮은 최하위 수치이다. 출산율이 낮은 이유로는 여성교육 확대로 경제활동 증가’, 가계, 사교육비 부담 확대, 주택문제 등 구조적 원인,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결혼 출산 기피 등을 들 수 있다. 이렇게 출산율이 낮아져 가다가 인구절벽시대를 맞을까 염려스럽다. 정부에서도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고는 있지만, 가임연령 세대들의 의식에 달려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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