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필

‘혼례지도(주례)사’ 자격증

문석흥 2013. 11. 30. 09:41

‘혼례지도(주례)사’ 자격증


  평생을 학교 선생을 하다가 정년퇴직을 하고 나온 후 이렇다 하게 하는 일 없이 지내 온지도 어언 10년이 되었다. 그러나 일정한 수익이 있는 일이 아니어서 그렇지 각종 봉사활동, 취미활동, 친목활동 등으로 무위도식하지는 않으며 살아가고 있다.
  내가 하고 있는 봉사활동 중에 특별히 즐겁고 보람을 느끼는 것은 결혼식 주례를 하는 일이다. 주례는 재임 시절에도 했지만, 퇴임 후에 하는 주례는 주로 제자들의 결혼식 주례를 하기 때문에 더욱 보람을 느낀다.
  며칠 전 신문에, “주례 달인• 명인 되겠다.” 은퇴자들 자격증 도전 붐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고 왠지 좀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한국주례전문인협회에서 3일간의 일정으로 혼례지도(주례) 전문 교육을, 수강생들에게 시키고 시험에서 70점 이상 점수를 받으면 협회에서 발급하는 ‘혼례지도(주례)사’ 자격증을 준다고 한다.
  자격증에는 2급 ‘명인(名人)’, 1급 ‘달인(達人)’이 있는데 1급 ‘달인’ 자격증은 2급 ‘명인’ 자격증을 취득하고 연간 40회 이상 주례를 하면 시험을 거쳐 받는다고 한다.
  수강생들의 대부분은 수십 년 직장생활에서 은퇴한 사람들이고 여기에는 교장, 대학교수,   외교관, 언론인, 목사, 기업가 등 직업도 다양했다. 수입도 주례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 주에 7~8번 주례를 하면서 월 100만 원을 버는 주례도 있다고 한다.
  시대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해 가니 무엇인들 안 변하랴. 이 시대는 자격증 시대다. 사소한 기능도 일정한 수련 과정이나 시험을 거쳐야 자격증을 받는다. 자격증이 있어야 해당 업소나 기관에 취업할 수 있고 또 자영업을 할 수도 있다.
  비근한 예로, ‘이․미용사’나 ‘장의관리(염습)사’ 같은 직종은 예전에는 어깨너머로 익혀 터득한 기술로도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전문학교를 나와 자격증을 취득해야 할 수 있다. 사회가 산업화 되면서 전문화된 기술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자격증 시대가 되는 것은 당연한 시대적 요구다.
  연륜과 경륜, 덕성만으로 해오던 결혼식 주례마저도 이제는 자격증 시대가 온 것인가. 그동안은 예식장에 소속된 전문 직업 주례가 있다는 말은 들었어도 ‘주례전문인협회’가 있어서 주례전문인 교육을 해서 자격증을 부여한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희망하는 수강생도 현직에서 은퇴한 쟁쟁한 인사들이 직업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가한다니 놀라운 일이다.
  한 때는 주례 하면 으레 국회의원, 시장, 군수 같은 공직의 장들의 독점이었다. 그것은 다분히 정치성이 있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인가, 이분들의 주례 서는 일이 금지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주례 기근 현상이 생겨 교장이나 교수님, 옛 은사님들이 주례석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아무리 자격증 시대라 하지만, 주례까지도 꼭 자격증을 주어 직업화해야 하겠는가. 주례사를 아무리 잘 준비해 간들 한정된 예식 시간에 쫓겨 이런저런 기본 의식을 제하고 실제 신랑 신부에게 들려주어야 할 주례사는 5~6분 정도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 속에 주례사를 얼마나 귀담아듣겠는가. 다만, 주례는 결혼식에 꼭 있어야 할 상징적 존재에 불과하다.
  아직은 아니지만, “자격증 없는 주례가 주례하는 결혼식은 불법이다.”라는 소리가 안 나오기를 바란다.


'수 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크와 해피-發  (0) 2013.11.30
그때가 좋았지-발  (0) 2013.11.30
여름철과 반바지  (0) 2013.11.30
복날과 세시음식  (0) 2013.11.30
부부의 날-發  (0) 2013.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