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필

그때가 좋았지-발

문석흥 2013. 11. 30. 09:50

발그때가 좋았지-發


  친구들이 모여 앉아 이런저런 지난 시절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때가 좋았지.”하며 공감을 한다. 그렇다면 지금은 그만 못 하다는 말인가?
  돌이켜 보면 지난 시절이야 지금보다 무엇이 나았겠는가. 주거 환경만 보아도 위풍 센 낡은 집에서 연탄아궁이로 난방하고 욕실은커녕 화장실도 재래식으로 밖에 따로 있었다. 상수도는 대도시에나 있었지 시골에는 우물물을 길어다 먹어야 했고 부엌도 별도로 있었고  요즘처럼 레인지나 전기밥솥 냉장고 싱크대 같은 주방 기구들이 없었으니 얼마나 불편했는가.   교통 환경은 또 어땠는가. 고속도로나 고속전철은 있지도 않았고 냉난방이 된 버스도 없었다. 도로는 국도쯤 되어야 포장이 되었고 웬만한 도로는 비포장도로로 털털거리는 버스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다녀야 했다. 추석이나 설 명절 때 귀성하려면 서울역 앞마당에 열차표를 사기 위한 인파로 아귀다툼을 벌여야 했다. 열차는 대만원으로 지붕 위까지 올라가 타고 가야 했다.
  경제 사정도 한 말로 가난 그것이었다. 국민 80%가 농업에 종사하였다. 그나마 수리안전답이란 거의 없다시피 하였고 천수답에 비료도 태부족에다 농사도 거의 소와 인력에 의존하다 보니 소출이 풍년이나 되어야 양석 소출을 했었다. 직장인들도 월급이 많지도 않으려니와 지금처럼 상여금이요 성과급이요 하는 것도 없었다.
  식생활이나 의생활 면에서도 열악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지금은 사라진 말이지만, 춘궁기, 보릿고개가 실제 있었다. 보리 수확이 될 때까지 3~5월 기간이 쌀도 떨어지고 식량이 부족해서 배를 곯아야 했었다. 그래서였던가. 그 당시 우리 청소년들의 신장이 같은 또래의 일본 청소년들보다 5cm나 적었다는 통계가 있었다.
  의복이나 신발인들 철 따라 다양하게 갖추어 착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디 체면 차려야 할 곳에 가려면 형제간에 또는 친구 간에 빌려 입거나 심지어는 세탁소에 가서 약간의 사용료를 주고 몰래 입어야 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문화생활이라는 것은 지금의 저개발국 수준이었다. 학생들이 학교에 입학하면 가정환경조서를 써냈었는데 거기에 라디오, 전화, 냉장고, TV, 세탁기, 자가용, 등의 가정 문화 기기의 유무를 기록하는 난이 있었다. 그 당시에 이런 가정용품을 갖는다는 것은 부유층에 들어갔다.
  이런 구차한 이야기 인제 와서 되새겨봐야 무엇하겠느냐만, 지금 이나마 풍요롭게 사는 것이 지난 시절 어렵던 삶이 있었기에 더 풍요의 가치를 느끼며 절약하고 저축하려는 마음이 생기는 게 아닌가 한다.
  그런데 예서 그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란 남보다 더 가지려 하고 더 좋은 것을 추구하려다 보니 만족을 모르고 끝없는 욕심을 향하여 치닫게 된다. 그래서 때로는 남을 속이고 투기하고 싸움도 벌인다. 심지어는 재산 문제로 부모 자식 간에, 형제간에 법정 소송도 불사한다.
  가난했던 시절에는 인심은 넉넉했었다. 형제간에 우애도 있었고 부모에 대한 효심도 지극했다. 사소한 실수나 잘못이 있어도 화해하고 용서하고 송사 사건도 지금처럼 많지도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때가 좋았지.”라고 하는가보다.
  욕심 때문에 마음속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자신도 모르게 병들어 가는 요즘 사람들, 그 마음의 짐을 벗어 놓고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마음은 될 수 없는지.




'수 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그네 설음-發  (0) 2013.11.30
자크와 해피-發  (0) 2013.11.30
‘혼례지도(주례)사’ 자격증  (0) 2013.11.30
여름철과 반바지  (0) 2013.11.30
복날과 세시음식  (0) 2013.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