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럼

축구에 서린 우리의 한

문석흥 2013. 11. 30. 10:13


축구에 서린 우리의 한


  지난 10일 밤 일본 삿포로 돔에서 열린 한일 축구 대표 팀 친선 경기에서 우리 대표팀이 0대3으로 완패하는 것을 보며 너무 속이 상해서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 근래에 들어 일본 원정 한‧일 축구 평가전 전적은 우리가 3승 2무로 무패의 기록으로 달려왔으나 이 기록이 이번에 허망하게 무너진 것이다. 전반 초부터 밀리는 듯하다가 일본에게 1골을 먼저 허용했으나 그래도 우리 대표 팀의 저력과 관록으로 보아 후반에 가서는 만회하리라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오히려 후반에는 더 기력이 떨어져 연속 2골을 허용하며 0패를 당하고 고개를 떨어뜨리며 퇴장하는 우리 선수들을 보면서 측은한 마음도 들면서 일본에게 졌다는 데 대한 분한 감정이 솟구쳤다.
  감독이나 선수들도 자신감이 없었거나 지고 싶어 진 것은 아니겠지만, 경기라는 것은 당일의 선수 개개인의 컨디션이나 경기 운도 따르게 마련이거늘, 선수들을 책망하고자 함은 아니다. 단지, 일본만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우리 민족의 과거 식민통치 하에 한 맺힌 원한이라 할까? 바로 그런 감정 때문에 진 것이 못내 아쉽고 분한 것이다.
  그래서 과거에 인기 있었던 권투나 레슬링 경기 같은 한일전의 TV 중계가 있을 때마다 전 국민이 TV 앞에 모여 앉아 우리 선수가 이기기를 온 집안이 떠나가도록 함성을 지르며 응원을 하지 않았던가. 또한, 일본과의 경기에는 반드시 숙적이라는 말이 앞에 붙어 다녔다. 가뜩이나 요즘 와서 부쩍 더 독도 문제로 해서 일본이 신경전을 벌이며, 며칠 전에는 일본 국회의원들이 독도에 가겠다고 입국하려 하지 않나, 일본정부는 국제재판소 회부하자고 하지 않나 하는 데 일본 땅에서 펼친 이번 축구를 이겨 저들의 기세를 보기 좋게 꺾어주기를 기대했고 또 당연히 그러리라 믿었었다.
  그래도 바로 그 다음 날 아침, 20세 이하(U-20) 대표 팀이 콜롬비아에서 개최되는 FIFA(국제축구연맹) U-20 월드컵 16강전에서 벌인 스페인과 일전은 비록 지기는 했지만, 전날 월드컵 대표 팀이 일본 대표 팀에게 패한 씁쓸한 마음을 풀어버리기에 충분 했다.
  우리 팀은 조별 경기에서 1승 2패로 조 3위로 갓 가스로 16강에 진출하여 다른 조에서 3전 전승으로 1위로 올라온 강력한 우승후보 스페인 팀에 비해 전력으로 보나 체격 조건으로 보나 승산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의 놀라울 정도의 패기와 투지로 오히려 스페인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전 후반 득점 없이 무승부로 끝냈다. 이어 계속된 연장전과 승부차기마저도 연장전까지 가서 아깝게 1점의 실축으로 패했지만, 오히려 패한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우리의 어린 선수들이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웠다. 만약 이 경기에서 스페인을 꺾고 8강에 올랐다면 멕시코의 4강 신화를 더 능가할 법도 했을 것 같은 욕심이랄까 아쉬움도 없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근대축구가 전파된 것은 1882년(고종 19년), 인천에 상륙한 영국군함 풀라잉호스의 승무원들을  통해 전파된 것이라 한다. 그 후 1929년부터 시작한 경성과 평양의 경평 축구대항전은 축구의 관심을 크게 증폭시켰고 전 국민이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는 축구가 특히 일제 강점기 시대라 가슴에 쌓인 민족의 울분을 풀 수 있는 분출구였고 일본에 항거하여 독립정신을 키우는 싹이 된 것이다. 이렇게 출발한 축였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축구에 대한 감정은 남다른 한이 서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과의 경기에서는 축구를 비롯해서 어떤 종류의 종목에서도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정신이 앞서는 것이다.
  이번 삿포로에서의 0대3 완패의 수모는 다시금 일본을 잡는 기폭제가 되어야 한다. 우리도, 일본도 2014년 브라질 월드컵 3차 예선에 출전하는 팀으로서 월드컵에서 만큼은 기필코 일본을 앞지르는 전적을 쌓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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