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만능 시대
오래 만에 옛 제자들과 회식 자리를 가졌다. 나는 그들의 어린 시절의 특징을, 그들은 나의 옛날 스승의 모습을 떠 올리며 그 시절로 돌아가 여러 가지 추억에 젖어들었다.
한참 지난 시절의 이런 저런 추억담이 오간 던 중, 한 제자가 말하기를, “선생님, 저는 아직도 선생님께서 수업하시면서 예쁘게 쓰시던 칠판 글씨를 잊을 수가 없어요.”라고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또 다른 제자가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을 향해 설명을 해 가시면서 한손으로는 백묵을 쥐고 교재도, 칠판도 보시지 않고 비스듬히 서서 욧점을 간결하게 써 가시는데도 줄도 안 삐뚤어지고 예쁘게 쓰셨어요. 정말 환상이었어요.” 이 말을 들으면서 나는 내심 싫지는 않았으나 한편, 나한테 대한 추억이 겨우 칠판 글씨 잘 쓰는 것 밖에 없었는가 하는 점에는 좀 서운한 감도 들었다.
하긴 옛날 선생님들이나 관공서에 계신 분들은 글씨를 잘 써야 했고 또 대부분 다 잘 썼다. 그 당시는 요즘처럼 발달된 사무기기가 없었기에 모든 문서는 일일이 손으로 써야 했다. 그래서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 채용에도 유리했다. 채용 시 이력서를 제출하는 데도 반드시 자필로 쓰라는 단서가 붙었는데 이는 글씨를 보고자 함이 아니었던가.
군에 입대해서 훈련을 마치고 부대를 배치 받아 가면 신상명세서를 써서 제출하는데 필적이 좋은 사람은 즉석에서 본부 중대 행정병으로 뽑혔다. 지금도 지난날의 호적등본이나 초본을 보면 호적계의 말석 서기들의 글씨이거늘 한자(漢字)인데도 불구하고 정말 잘 썼음을 새삼 실감한다.
요즘은 이런 글씨를 볼 수도 없거니와 그렇게 쓰는 사람도 없을 것 같다. 이름 석자만 한자로 괄호 안에 써넣고 나머지는 전부 한글이거늘 그나마 손으로 쓴 글씨는 하나도 없고 모두 다 활자로 되어 있다. 어쩌다 손으로 쓴 한글 체를 보아도 아름다운 한글 필기체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고 잘 알아 볼 수도 없게 썼다.
지금은 컴퓨터가 생활 도구화 되어 컴퓨터에 워드프로세서와 복사기가 과거 손으로 하던 일을 다 할 수 있다. 컴퓨터의 자판만 치면 빠르고 정확하고 편리하게 모든 문서가 의도대로 잘 작성되니 어찌 매혹되지 않으랴. 나부터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200자 원고지에 원고를 손으로 써서 우편으로 보내던 것을 지금은 컴퓨터 자판으로 처서 파일에 담아 이메일로 보내니 얼마나 편리한가.
이러다 보니 펜을 들고 종이에 쓰기보다는 컴퓨터 자판기를 치는 데 더 익숙해지고 또 그렇게 해야 잡지사하고도 서로 원고를 주고받는 데 원활해지니 이젠 200자 원고지도 만년필도 다 쓸모가 없게 되었다. 원고도 거의 다 한글로 작성하다 보니 어쩌다 한자로 표기해야할 단어가 있어도 글자는 떠오르는데 막상 쓸려면 자획을 맞게 쓸 수가 없다. 보기만 하고 자주 쓰지 않다 보니 내 손길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다.
프랑스의 유전학자 라마르크(1774~1829)의 ‘용불용설(用不用說)’ 에 의하면 “동물의 기관 중에 잘 쓰는 부분은 발달하고 짤 쓰지 않은 부분은 퇴화해 버린다.”라고 했다. 하나의 학설이지만, 맞는 것도 같다. 요즘 학교에서도 노트와 연필 대신 컴퓨터 키보드가 자리를 잡아 가고 있으니 자연 손으로 쓰는 글씨는 사라져 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별도로 글씨쓰기 교육이 이뤄지지도 않고 보니 글씨를 올바르게 쓸 수가 있겠는가.
학생들도 그렇거늘 성인들도 좀처럼 글씨 쓸 기회가 없다. 일반 사회에서 통용되는 각 종 서류들도 손으로 쓴 것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이렇게 흘러가다 보면 손 글씨도 옛날 붓글씨가 서예작품으로서 서예대전에 출품하듯이 손 글씨도 일상생활 속에서 사무 기능이나 의사전달, 기록하는 용도에서 벗어나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서 평가를 받는 시대가 올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글씨는 아무리 컴퓨터 만능시대라 할지라도 일상생활 속에서 영영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비록 달필은 아니더라도 남이 못 알아 볼 정도의 글씨를 써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