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필

대만을 다녀와서

문석흥 2013. 11. 30. 10:03

대만을 다녀와서


  5월이지만, 중순을 좀 넘어선 때라 낮에는 여름 못지않게 더웠다. 문우 10명이 조가 되어 3박 4일의 일정으로 대만 패키지여행을 다녀왔다. 대만은 우리나라와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섬나라지만 아열대성 기후로 덥고 비가 많이 오고 습도가 높은 곳이다. 그러나 우리 여행 기간에는 운 좋게도 비도 오지 않았고 날씨도 구름만 좀 있었지 못 견딜 정도로 덥지도 않았다.
  이번 4일간의 대만 여행은 수도인 타이베이(臺北) 시와 대만 중간 지점 동쪽 해안도시 화리엔(花蓮)의 온천과 옥 박물관, 타이루꺼(太魯閣) 협곡 그리고 대만 북부 해안에 있는 예류(野柳)해양지질공원 등 세 지역을 다녔다. 타이베이에서는 국립고궁박물관, 중정기념관, 충렬사, 용산사, 야시장, 서문정 거리, 타이베이 101빌딩을 가 보았다.
  역시 듣던 바대로 박물관내에 전시된 각종 중국 보물과 미술품은 중국 5000년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 주었고 중국 역대 황실의 수장품과 국보급 보물들이 거의 다 이곳 대만에 보관되어 있다고 하니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75만 점에 이르는 보물들을 한꺼번에 다 전시하기가 어려워 주기적으로 교체 전시를 한다고 한다.
  전시된 유물들은 인간의 상상력을 초월한 솜씨로 만들어진 작품들이지만, 순수한 예술품이라기보다는 황제나 힘 있는 윗사람들에게 바침으로써 자신의 신분 보장과 안위를 위해 만들어졌다니 이 또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닌가.
  중화민국 국민당 정부의 장개석 총통은 중국 본토에서 모택동 공산당과 내전을 벌이다가 패하여 자신의 국민당 정부군을 이끌고 대만으로 건너오면서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있는 많은 보물과 문화재를 함정에 싣고 왔다고 한다. 그 당시 모택동이 이를 알고도 폭격하지 않고 가져가게 한 것은 결국 대만도 머잖아 자신의 치하에 들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한다. 장개석 총통도 기어코 대륙을 수복하겠다는 일념으로 살아오다가 83세의 일기로 마감했지만, 자신의 시신은 대륙에 묻겠다고 하여 그의 시신은 아직도 매장하지 않은 채 묘소에 누워 있다 한다.
  그러나 장개석 총통도, 모택동 주석도 다 자신들이 하나의 중국 통일을 못 이룬 채 그 한을 품고 지금은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 지금 대만의 중화민국 정부는 공식 국가가 아니고 거대한 중화인민공화국(중국)만이 중국을 대표하고 있다. 대만 정부가 독립선언만 하지 않는다면 중국 정부는 무력통일은 하지 않겠다고 한다.
   대만은 과거 우리와 같이 일제의 식민지였고 해방과 함께 동족인 공산당과 맞서 싸웠던 반공 국가로서 아시아국가 중 가장 가까운 쌍둥이 같은 절친한 우리의 우방국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강대국으로서 국제사회에 등장하면서 우리와 본의 아니게 국교가 단절되고 내왕이 없다가 근래에 와서 다시 교류가 이뤄지고는 있지만, 서운한 감정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여러 관광지에 가 봐도 중국어와 일본어 안내문이나 해설문은 있는데 한글 안내문이나 해설문은 없었다. 중국은 동족이라 그렇다지만, 일본은 자기들을 식민 지배를 했던 나라인데도 전혀 적대감 없이 아주 우호적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대만의 철로 위를 달리는 열차는 우리 현대중공업 제품이며 열차에서 만난 대만 젊은이들이 가진 휴대전화, 스마트폰은 우리의 삼성, LG 제품인 것을 보고 가슴 뿌듯함을 느꼈다.
  이제 대만과 중국은 자유롭게 교류하고 민간인 관광객도 허용되고 있다. 이들 관광단은 와서 8일간, 대만 섬 구석구석 자유롭게 다 돌아보고 간다고 한다. 부러운 마음이 든다. 우리도 이들처럼 남과 북이 동족인데 왜 자유롭게 내왕을 못 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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